선정의 변
홍성훈 프로그램팀 팀장
올해도 어김없이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스물네 번째 돌아왔습니다. 내란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응원봉과 피켓을 들었던 광장은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갔고,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감각이 움트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봄이 찾아온 것 같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엄혹한 현실을 마주치곤 합니다. 세계 도처에는 전쟁이 그칠 줄 모르며 하루에도 무고한 이들이 다치거나 죽습니다. 따뜻한 날씨에 시민들이 소매를 걷고 길거리를 오가지만 여전히 많은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눈을 뜨고 시설에서 눈을 감습니다.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장애인 운동가들은 3월 26일부터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농성장을 펴고,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인 4월 20일 아침까지 광화문역에서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하였고 오늘날까지도 장소를 바꿔 이어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장애인들에게 민주주의는 다시 찾아와야 할 것이 아니라 토대부터 만들어가야 할 무엇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응모된 작품 수는 총 57편이며, 심사를 거쳐 선정한 작품은 총 12편입니다. 이 12편을 다시 장르적으로 구분하면 4편의 극 영화, 8편의 다큐 영화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유쾌하면서도 발칙한 태도로 우리 사회에 겹겹이 쌓인 억압이나 차별을 돌파하려는 시도를 선보인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기존의 질서를 교란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극 영화들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경향은 의도적인 ‘비틀기’가 시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막작으로 선정한 <두 분의 결혼을 (안) 축하합니다>는 장애인 커플이 결혼하기로 한 순간부터 부딪히게 되는 사회적ㆍ제도적 장벽을 드러냅니다. 오프닝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결혼 행진곡과 두 사람이 직면한 어려움은 묘한 어긋남을 보여줍니다. 이 어긋남은 어떤 몸들이 결혼이라는 법적 테두리를 통과하고, 통과하지 못하는지 보여주는 방향계 역할을 합니다. 영화 말미에 이르러 여러 어려움에 견디다 못한 서연이 혼인신고서를 찢어버리는데, 재헌이 가져와 풀로 붙인 혼인신고서의 조각조각들은 불평등한 결혼제도에 틈을 내고 싶다는 메시지로까지 읽힙니다.
<말을 걸다, 鬼(귀)>와 <우리의 일 자리>는 ‘부재’로 인해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장애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장애귀의 출현으로 음산하게 시작되는 영화 <말을 걸다, 鬼(귀)>는 한 장애귀의 서글픈 사연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살아생전 쌓여 있었던 억울함과 한을 장애인 대중의 계급적인 차원으로까지 연결하여 읽어내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결말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영화의 투박함마저 장르적 재미로 볼 수 있게 만들고자 한 어떤 결기가 느껴집니다. <우리의 일 자리>는 실제로 경기도의 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근무 중인 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출연하여 공공일자리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아무리 외부에서 공공일자리의 가치를 폄하하려 시도해도 훼손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하기의 일부인 영화의 대사는, 일종의 미러링 역할을 하는데 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기존 미디어에서 자주 노출되는 언어를 발화하게 될 때 그 언어가 지니고 있는 모순을 드러냅니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떤 짜릿함을 선사한다면 그것은 전복된 위치에서 비롯되는 짜릿함일 것입니다.
<잘 가, 안녕>은 가족과 장애인 당사자의 관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볼 때 장애인 당사자와 비장애인 가족 구성원은 돌봄으로 기울어진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러한가’라는 질문을 품고 한 발짝 더 다가설 때 가족 안에서 미묘하게 움직이는 관계의 역동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잘 가, 안녕>은 ‘장애인 자녀 살해’라는 비극을 기존 미디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재조명합니다. 기존 미디어가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부모의 입장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다면, <잘 가, 안녕>은 피해자인 장애인 당사자에게 전적인 발언권을 넘겨줌으로써 기성의 서사에서 볼 수 없었던 이야기를 발굴하여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외면하고자 하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이며 비극의 연쇄를 끊기 위해 필요한 어떤 단호한 태도를 요청합니다.
이번 2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의 슬로건은 ‘해 보기 전까진 모르는 거잖아!’입니다. 이 슬로건은 장애인 당사자가 어떤 도전을 하기 전에도 먼저 제지하는 사회에 딴지를 거는 말로 들리기도 하고, 새롭고 낯선 세계에 용기 있게 발을 들이겠다는 선언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9편의 다큐멘터리 작품들은 선명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각자의 이야기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Mapping>은 인공와우에 들어오는 소리를 당사자의 개별 청력에 맞게 조절하는 과정을 말하는데,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질문들을 ‘사운드적’으로 제시하는 영화입니다. 인공와우를 착용하고 맵핑과정을 거치는 세진과 세진의 친구이자 이 영화의 감독인 주현은 소리를 채집하는 과정에서 ‘진짜 소리’가 무엇인지, 그것이 있긴 한 것인지를 질문합니다. <말하지 않아도>는 대체의사소통보조기기인 AAC를 이용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세 명의 장애인 당사자의 이야기입니다. AAC로 생각과 감정을 서로 나누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소통의 기본적인 전제는 상대방을 궁금해하고 기다리는 태도임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떨리는 손_우리들의 참정권>은 ‘찍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찍기’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떨리는 손_우리들의 참정권 이야기>는 참정권 운동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피플퍼스트 성북센터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피플퍼스트 활동가들은 오랜 기간, 알기 쉬운 선거 공보물과 투표 보조인 등을 주장하며 선거에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지원과 제도에 대해 주장해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의 투표권을 보장한다고 나와 있지만, 그것은 아직 발달장애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법 조문입니다. 피플퍼스트 활동가들은 참정권 보장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정부에 “(참정권 보장) 해 보기 전까진 모르는 거잖아”라며 외치고 있습니다.
또한 올해도 저희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는 탈시설을 다룬 작품들이 빠지지 않고 상영됩니다. 선정된 작품은 국내 작품 세 편, 해외 작품 한 편입니다. 먼저 국내 작품은 <벽을 넘은 목소리>, <김기영의 조각들>, <이기적인 조선동>이 상영됩니다. <벽을 넘은 목소리>는 지난 2024년 11월 초 밝혀진 울산의 태연재활원 학대 사건 이후의 시간을 다룹니다. 피해자와 가족의 이야기를 천천히 듣다 보면 ‘좋은 시설’이란 없으며, 탈시설만이 당사자의 삶을 온전하게 지속할 원동력임을 깨닫게 되곤 합니다. <김기영의 조각들>과 <이기적인 조선동>은 탈시설한 장애인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눈여겨볼 만한 점은 이들의 탈시설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의지와 실행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주변 조력자들의 도움이 든든한 울타리처럼 받쳐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탈시설을 열망하는 주체들이 모여 행동할 때 탈시설은 비로소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영화제에서 유일한 해외 작품인 <네 개의 벽>은 1890년에 설립된 캐나다의 ‘매니토바 발달센터’에서 일어난 인권유린 사건과 시설 폐쇄 과정을 다룹니다. 이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시설이 어떠한 논리에 세워지고, 그 논리를 넘어서는 방법은 무엇인지 질문이 절로 떠오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특별상영 세션에 배치된 <스탠바이 액션>은 지하철 속 박경석 대표의 일상과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소동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좀처럼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세상 속에서 싸움을 반복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영화는 그들의 싸움이 지닌 의미와 현재를 성찰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12편의 작품이 관객 여러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품들을 먼저 보고 내놓는 프로그램 위원들의 입장에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우리의 영화제가 관객 여러분 각자가 놓인 일상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를 선사하기를 바랍니다. 그런 바람을 담아, 작품들을 여러분 앞에 내놓습니다.
제24회 서울장애인인권화제 프로그램팀 김원우
서한영교
이규식
이정한
최한별
홍성훈
선정의 변
홍성훈 프로그램팀 팀장
올해도 어김없이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스물네 번째 돌아왔습니다. 내란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응원봉과 피켓을 들었던 광장은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갔고,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감각이 움트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봄이 찾아온 것 같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엄혹한 현실을 마주치곤 합니다. 세계 도처에는 전쟁이 그칠 줄 모르며 하루에도 무고한 이들이 다치거나 죽습니다. 따뜻한 날씨에 시민들이 소매를 걷고 길거리를 오가지만 여전히 많은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눈을 뜨고 시설에서 눈을 감습니다.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장애인 운동가들은 3월 26일부터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농성장을 펴고,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인 4월 20일 아침까지 광화문역에서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하였고 오늘날까지도 장소를 바꿔 이어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장애인들에게 민주주의는 다시 찾아와야 할 것이 아니라 토대부터 만들어가야 할 무엇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응모된 작품 수는 총 57편이며, 심사를 거쳐 선정한 작품은 총 12편입니다. 이 12편을 다시 장르적으로 구분하면 4편의 극 영화, 8편의 다큐 영화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유쾌하면서도 발칙한 태도로 우리 사회에 겹겹이 쌓인 억압이나 차별을 돌파하려는 시도를 선보인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기존의 질서를 교란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극 영화들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경향은 의도적인 ‘비틀기’가 시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막작으로 선정한 <두 분의 결혼을 (안) 축하합니다>는 장애인 커플이 결혼하기로 한 순간부터 부딪히게 되는 사회적ㆍ제도적 장벽을 드러냅니다. 오프닝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결혼 행진곡과 두 사람이 직면한 어려움은 묘한 어긋남을 보여줍니다. 이 어긋남은 어떤 몸들이 결혼이라는 법적 테두리를 통과하고, 통과하지 못하는지 보여주는 방향계 역할을 합니다. 영화 말미에 이르러 여러 어려움에 견디다 못한 서연이 혼인신고서를 찢어버리는데, 재헌이 가져와 풀로 붙인 혼인신고서의 조각조각들은 불평등한 결혼제도에 틈을 내고 싶다는 메시지로까지 읽힙니다.
<말을 걸다, 鬼(귀)>와 <우리의 일 자리>는 ‘부재’로 인해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장애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장애귀의 출현으로 음산하게 시작되는 영화 <말을 걸다, 鬼(귀)>는 한 장애귀의 서글픈 사연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살아생전 쌓여 있었던 억울함과 한을 장애인 대중의 계급적인 차원으로까지 연결하여 읽어내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결말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영화의 투박함마저 장르적 재미로 볼 수 있게 만들고자 한 어떤 결기가 느껴집니다. <우리의 일 자리>는 실제로 경기도의 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근무 중인 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출연하여 공공일자리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아무리 외부에서 공공일자리의 가치를 폄하하려 시도해도 훼손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하기의 일부인 영화의 대사는, 일종의 미러링 역할을 하는데 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기존 미디어에서 자주 노출되는 언어를 발화하게 될 때 그 언어가 지니고 있는 모순을 드러냅니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떤 짜릿함을 선사한다면 그것은 전복된 위치에서 비롯되는 짜릿함일 것입니다.
<잘 가, 안녕>은 가족과 장애인 당사자의 관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볼 때 장애인 당사자와 비장애인 가족 구성원은 돌봄으로 기울어진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러한가’라는 질문을 품고 한 발짝 더 다가설 때 가족 안에서 미묘하게 움직이는 관계의 역동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잘 가, 안녕>은 ‘장애인 자녀 살해’라는 비극을 기존 미디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재조명합니다. 기존 미디어가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부모의 입장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다면, <잘 가, 안녕>은 피해자인 장애인 당사자에게 전적인 발언권을 넘겨줌으로써 기성의 서사에서 볼 수 없었던 이야기를 발굴하여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외면하고자 하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이며 비극의 연쇄를 끊기 위해 필요한 어떤 단호한 태도를 요청합니다.
이번 2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의 슬로건은 ‘해 보기 전까진 모르는 거잖아!’입니다. 이 슬로건은 장애인 당사자가 어떤 도전을 하기 전에도 먼저 제지하는 사회에 딴지를 거는 말로 들리기도 하고, 새롭고 낯선 세계에 용기 있게 발을 들이겠다는 선언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9편의 다큐멘터리 작품들은 선명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각자의 이야기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Mapping>은 인공와우에 들어오는 소리를 당사자의 개별 청력에 맞게 조절하는 과정을 말하는데,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질문들을 ‘사운드적’으로 제시하는 영화입니다. 인공와우를 착용하고 맵핑과정을 거치는 세진과 세진의 친구이자 이 영화의 감독인 주현은 소리를 채집하는 과정에서 ‘진짜 소리’가 무엇인지, 그것이 있긴 한 것인지를 질문합니다. <말하지 않아도>는 대체의사소통보조기기인 AAC를 이용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세 명의 장애인 당사자의 이야기입니다. AAC로 생각과 감정을 서로 나누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소통의 기본적인 전제는 상대방을 궁금해하고 기다리는 태도임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떨리는 손_우리들의 참정권>은 ‘찍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찍기’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떨리는 손_우리들의 참정권 이야기>는 참정권 운동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피플퍼스트 성북센터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피플퍼스트 활동가들은 오랜 기간, 알기 쉬운 선거 공보물과 투표 보조인 등을 주장하며 선거에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지원과 제도에 대해 주장해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의 투표권을 보장한다고 나와 있지만, 그것은 아직 발달장애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법 조문입니다. 피플퍼스트 활동가들은 참정권 보장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정부에 “(참정권 보장) 해 보기 전까진 모르는 거잖아”라며 외치고 있습니다.
또한 올해도 저희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는 탈시설을 다룬 작품들이 빠지지 않고 상영됩니다. 선정된 작품은 국내 작품 세 편, 해외 작품 한 편입니다. 먼저 국내 작품은 <벽을 넘은 목소리>, <김기영의 조각들>, <이기적인 조선동>이 상영됩니다. <벽을 넘은 목소리>는 지난 2024년 11월 초 밝혀진 울산의 태연재활원 학대 사건 이후의 시간을 다룹니다. 피해자와 가족의 이야기를 천천히 듣다 보면 ‘좋은 시설’이란 없으며, 탈시설만이 당사자의 삶을 온전하게 지속할 원동력임을 깨닫게 되곤 합니다. <김기영의 조각들>과 <이기적인 조선동>은 탈시설한 장애인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눈여겨볼 만한 점은 이들의 탈시설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의지와 실행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주변 조력자들의 도움이 든든한 울타리처럼 받쳐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탈시설을 열망하는 주체들이 모여 행동할 때 탈시설은 비로소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영화제에서 유일한 해외 작품인 <네 개의 벽>은 1890년에 설립된 캐나다의 ‘매니토바 발달센터’에서 일어난 인권유린 사건과 시설 폐쇄 과정을 다룹니다. 이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시설이 어떠한 논리에 세워지고, 그 논리를 넘어서는 방법은 무엇인지 질문이 절로 떠오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특별상영 세션에 배치된 <스탠바이 액션>은 지하철 속 박경석 대표의 일상과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소동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좀처럼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세상 속에서 싸움을 반복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영화는 그들의 싸움이 지닌 의미와 현재를 성찰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12편의 작품이 관객 여러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품들을 먼저 보고 내놓는 프로그램 위원들의 입장에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우리의 영화제가 관객 여러분 각자가 놓인 일상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를 선사하기를 바랍니다. 그런 바람을 담아, 작품들을 여러분 앞에 내놓습니다.
제24회 서울장애인인권화제 프로그램팀 김원우
서한영교
이규식
이정한
최한별
홍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