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상영작

선정작

마루와 내 친구의 결혼식

2024 | 31’ | 극 | 이현빈


배리어프리 ⭕


시놉시스

비혼, 직장인, 장애인, 배우, 활동가등등 다양한 수식어를 가진 민아. 친구 현경의 결혼식을 축하하러 모인 날, 깜장 치와와가 민아게게 다가온다. 민아는 깜장 치와와에게 '마루'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가 살아온 삶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귀여운" 마루, 오직 귀엽기 위해, 인간 세계에 귀여운 생명들을 제공하기 위해 견디어 온 시간들을.

“마루야, 지금 네게는 뭐가 보이니?”


인권평

장애, 욕망, 돌봄, 그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

김상희 (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영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며, 때로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존재들을 조명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마루와 내 친구의 결혼식은 그러한 역할을 고민하며, 장애인, 여성, 동물과의 관계속에서 돌봄과 독립,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장애를 가진 주인공 민아가 다양한 정체성과 욕망을 지닌 존재들과 관계를 맺으며 겪는 일들을 다룬다. 결혼을 앞둔 친구와 함께하는 모임에서 한 친구가 길을 잃은 강아지를 발견하고, 임시 보호자가 될 사람을 찾는다. 하지만 저마다의 사정으로 책임을 질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민아가 강아지를 맡게 된다. 처음에는 돌봄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만, 이내 ‘마루’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한다.

이 과정에서 민아는 또 다른 사회적 편견과 마주한다. 친동생과의 만남에서, 동생은 장애를 가진 민아가 친구의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 축하 대신 걱정을 먼저 내비친다. 또한, 자신과 상의 없이 강아지를 데려왔다며 화를 낸다. 이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또 다른 돌봄이 필요한 존재와 관계를 맺으려 할 때, 사회가 보이는 시선과 구조적 편견을 보여준다. 민아에게는 관계 맺을 권리와 욕망이 있지만, 주변인들은 이를 불편하게 여기며 쉽게 차단해 버린다. 이는 마치, 돌봄이 필요한 존재가 또 다른 돌봄이 필요한 존재와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민아는 이러한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루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둘은 점차 가족이 되어간다. 건강이 좋지 않던 마루가 점차 회복하는 과정은, 단순한 반려동물이 돌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돌봄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민아는 마루를 보살피면서도 마루에게서 위안을 얻고, 이는 인간과 동물 간의 관계에서도 충분히 가능함을 증명한다.

이 영화는 사회가 당연하게 여겨온 돌봄의 구조와 그 속에 자리 잡은 차별적 시선을 비판하면서, 누구나 관계를 맺고 함께 살 권리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돌봄을 받기만 하는 존재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관계를 선택하고 돌봄을 실천할 수 있는 존재임을 말해주는 영화다.


반장

2024 | 42’ | 극 | 양준서


배리어프리 ⭕

시놉시스

자신의 진짜 꿈은 외면한 채 장애라는 벽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체어를 탄 소녀와 아무 꿈도 목표도 없이 남들이 시키는 대로 과서 같은 삶을 살아온 모범생 소녀의 아름다운 성장통.

장애 때문에 반장은 꿈꿀 수 없었던 은호와 하고 싶지 않은 장을 늘 억지로 도맡아 온 선우가 서로를 통해 세상의 시선과 계를 뛰어넘어 자신이 진짜 원하는 선택을 하는 이야기.


인권평

서로로부터, 서로에게

홍성훈 (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반장>은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보기 드문 영화다. 십대 청소년 인물들이 전면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학생들이 교실로 우르르 몰리는 학교 복도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유유히 들어가는 은호. 그리고 임시반장이지만 교실에 있는 모두가 ‘어차피 반장’이라고 생각하는 선우가 주인공이다.

은호와 선우는 맨 뒷자리에 한 분단 간격을 둔 채 나란히 앉아 있다. 선우는 담임교사로부터 은호의 하굣길에 동행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둘은 집으로 향하며 같이 있는 시간을 늘려나간다. 이때부터 조금씩 선우는 은호의 시선에서 주변 풍경을 바라보게 된다. 체육시간이면 체육관 어느 한 곳에서 친구들의 모습을 그리는 은호가 신경 쓰인다거나, 하굣길에서 무심코 이용했던 육교가 은호에게는 장애물일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변화는 선우만이 겪는 과정이 아니다. 은호 또한 선우와 상호작용하면서 애써 외면하려 했던 자신의 꿈을 꺼내본다. 은호는 선우에게 원래 자신의 꿈이 영화감독이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장애를 가진 자신이 영화감독을 하기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기에 그 꿈은 접었다고 한다. 은호의 이야기를 들은 선우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다음 만남 때 인터넷에서 산 드론을 선물하기도 한다. 벤치에 앉아 둘이 함께 드론을 날리며 학교의 전경을 찍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다.

영화 <반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선우와 은호의 욕망의 부등호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해 커져가는 것이다. 앞에서 썼듯, 선우는 반 친구들에게나 교사에게나 이미 반장이라는 기대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선우는 그 기대감 앞에서 머뭇거린다. ‘반장 선우’는 엄마나 다른 사람이 심어놓은 꿈이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꿈은 아니라는 것이다.

은호는 선우에게 반장 일이 힘들면 안 하면 되지 않냐며 원하는 대로 해도 된다고 조언을 건넨다. 선우 역시 은호에게 반장 일 어렵지 않다며 다리 신경 쓰지 말고 반장선거에 나가보라고 말한다. 은호와 선우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 너무 쉽게 얘기하는 서로의 말에 상처받지만 동시에 그 조언을 곱씹으며 생각이 많아진다.

 

결국 화해하고 오해를 푸는 두 사람 선우는 은호에게 반장선거에 나가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은호 덕분에 처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선우는 은호가 반장에 도전할 수 있도록 진심 어린 말들을 건네고 그런 선우의 응원에 은호 역시 반장선거에 대한 마음이 흔들린다. 드디어 반장선거 당일 은호는 번쩍 손을 들고 반장선거에 나간다.

“안녕하세요. 반장 후보 이은호입니다”

과연 은호는 꿈을 이루게 될까? 영화제에서 확인해보기를 바란다.

 

소리의 소리

2025 | 28’ | 다큐 | 한소리


배리어프리 ⭕

시놉시스

내 이름은 소리다. 한소리의 소리는 엄마의 소리를 잘라낸다. 엄마의 소리를 튕겨내고 끊어낸다. 외할아버지 장례식이 끝난 직후 내가 뱉어낸 소리는 엄마를 괴롭혔다. 외할아버지와의 이별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무시하는 소리의 폭력. 사과는커녕 오히려 더 뻔뻔하게 던져지는 소리.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엄마를 할퀸다. 이별의 슬픔을 이겨내고 씩씩하게 웃으면 한다는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하고, 엄마를 위한 선택이었다며 내가 행한 소리의 폭력을 정당화한다. 위로를 가장한 그 소리를 엄마는 또 잘 들어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 앞에서 나의 소리를 소거하는 일이다.



인권평

방향이 돌려진 카메라가 찍은 것은

홍성훈 (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길혜에게는 소리가 있다. 길혜는 (주로) 소리를 통해 타인 혹은 세상과 소통한다. 그녀에게 상대방의 말은 곧바로 감각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길혜의 말이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경우는 드물다. 역시 소리를 통해 전달된다. 얼핏 들으면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길혜에게는 소리라는 매개자가 중요하다. 눈치챈 이도 있을 텐데, 길혜의 딸 이름은 ‘소리’다. 그리고 길혜는 구화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이다. 그러니까 딸 소리는 엄마 길혜의 말을 상대방에게 전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말을 엄마에게 정확한 입모양으로 전달함으로써 엄마와 세상을 이어주는 통로 역할을 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든 유효한 사실일까? 딸이자 영화를 제작한 한소리 감독은 이전 작품 <주고받는 노력>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출품작)에서 이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소리의 소리>는 질문에 대한 또 다른 답변이라고 볼 수 있다.

2024년 12월 3일,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시민들의 일상은 멈췄다. 대통령의 탄핵선고를 앞두고 있지만 한밤중에 벌어진 계엄령 사태는 우리가 아직도 불면증을 겪고 있는 원인이 되었다. 그것은 길혜-소리 모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모녀는 만약계엄령이 지속되었다면, 일상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이야기한다.

소리: ‘계엄령 합니다’ 했잖아. 너무 무서웠지?

엄마 대화 어떻게 할 거야?

엄마: 대화?

소리: 응

엄마: 가만히 있으면 되지.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길혜의 말에 소리는 한바탕 웃어넘긴다. 이어서 길혜는‘가만히 안 있으면 죽어.’라고 말한다. 이날의 대화는 둘의 웃음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소리에게는 여러 번 곱씹는 장면이 된다.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태도에는 길혜 자신이 필요하는 것을 요구하면 주변 사람들이 피곤해한다는 경험이 녹아있는 듯하다. 소리는 혹시 그 ‘사람들’에 본인이 포함되는지 의심한다.

그런 의심을 증폭시킨 것은 길혜의 아버지의 죽음(그러니까 소리에게는 외할아버지), 그리고 장례식이었다. 길혜는 장례를 치르고 난 이후에도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고 낙담한다. 소리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언제까지 슬픔에 빠져 있을 것인지 묻는다. 하지만 길혜는 말없이 걷기만 한다. 길혜의 생각과 마음은 표정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한편 소리에게도 외할아버지의 죽음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다. 소리는 엄마 길혜 대신 외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말을 들을 수 있고, 건넬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것은 중환자실로 소리를 들여보낸 길혜의 의지이기도 했다. 소리는 그런 길혜에게 이제 그만 슬퍼할 것을 권유한 것이다.

소리는 길혜의 애도를 중지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는지, 세상과 길혜를 연결해준다는 자신의 ‘소리’가 되려 길혜의 고유성을 드러낼 기회를 차단하지는 않았는지 성찰하기 위해 길혜를 찍던 카메라를 자신에게 돌린다. 그리고 길혜에게도 카메라를 건넨다. 과연 방향이 돌려진 소리의 카메라, 길혜가 찍은 카메라는 무엇이 찍혔을까? 직접 확인해보기를 바란다.


어머니! 하늘빛이 어떻습니까?

2024 | 21’ | 다큐 | 방준식


배리어프리 ⭕

시놉시스

평생을 절망과 투쟁 속에서 살아온 중복 장애인 이종형 시인은 자신의 고통을 시와 하모니카를 통해 치유하며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낸다. 그의 이야기는 그저 개인의 고백이 아닌, 세상에 깊은 울림을 전하는 여정이다. 사라진 시집을 찾기 위해 전국의 헌책방을 뒤지는 한 사람의 노력과 이종형 시인의 삶을 담은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중요한 것들은 원래 보이지 않는다는 깨닫게 된다.


인권평

장호경 (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

 

이 영화는 세 가지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며 진행된다. 하나는 이 영화의 제작과 관련된 감독 자신의 이야기와 주인공의 시집을 찾아 떠나는 여정, 또 하나는 영화의 주인공인 시인 이종형의 이야기, 마지막 하나는 이 영화의 형식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군 복무 중 사고로 시력을 잃었던 적이 있는 감독. 현재는 점자 도서관에서 촬영 봉사를 하고 있다.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기에” 촬영을 배우고 카메라를 잡게 되었다 이야기하는 감독.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만난 시인 이종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감독은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종형에 대한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종형은 18세 때 폭발사고로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이후 이종형은 30여년 전시로 등단하여 시집을 한 권 냈다. 감독은 이제는 사라져버린 이 시집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자신이 기록하는 이 영화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작 이종형시인은 이 영화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종형과 함께 볼 수 있는 배리어프리 영화를 만들기 위한 공부를 시작한다.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기에”

우리는 이 영화를 음성해설과 자막해설을 포함하고 있는 영화로 만날 수 있다.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 영화는 자연스럽게 음면해설과 이어지며, 음면해설은 억지스럽지 않게 그 자리에서 의미를 가지고 존재한다. 보통의 배리어프리 영화들은 이미 제작이 완료된 상태에서 삽입되기 때문에 들어갈 자리를 확보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음성해설의 경우, 현장음과 현장음 사이, 대사와 대사 사이 제한적으로 존재하는 시간 안에 완료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절약적인 문장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도 선택적으로 전달할 수 밖에 없다. 수어통역이나 자막 같은 경우도 영화의 미장센을 깰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 그러나 이 영화

는 먼저 배리어프리를 고려하여 제작되었기 때문에 억지스럽지 않고 여유있게 삽입되고, 오히려 영화의 이해를 돕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흔히 배리어프리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 그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영화감상을 방해한다는! 편견을 깬다.

이 영화는 이종형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 외적인 것, 이종형을 만난 감독과 “이종형의 고귀한 인생”이 담긴 시집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의지와 이 과정이 담긴 영화를 이종형과 함께 보고자 하는 감독의 노력이 더 중요한 영화다. 그리하여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누군가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가 그 주인공에게, 제작자에게 어떤 의미로 회귀하는가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미덕! 이 모든 노력이 어떤 고귀한 행위가 아니라 “누군가는 해야하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만은 않은 일이며, 이런 일들이 조금씩 세상을 바꿔나갈 것이라는 감독의 수줍은 마지막 고백이다.


천사와 드라이브

2024 | 29’ | 다큐 | 김로사


배리어프리 ⭕

시놉시스

로사의 아버지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으로, 손재주를 타고났지만 재능을 펼칠 기회가 적었다, 그가 가족을 향한 사랑과 희생을 표현하는 방식은 드라이브였다. 어느 날, 그에게 또 다른 불치병이 찾아온다. 그의 불건강을 지켜보며 로사는 숨 가쁜 꿈을 꾼다. 언젠가 다시 아버지와 드라이브를 할 수 있을까.


인권평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소중하고 평범한 꿈에 대하여
이정한 (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딸 '로사'의 나지막한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로사는 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하며 그의 삶을 차분히 전한다. 유년 시절, 청년의 기억, 실업과 장애로 이어진 삶의 여정을 로사는 담담히 읽어 내려가듯 말한다. 아버지는 한국 사회의 수많은 '가장' 중 하나였다. 경제난 속에 실업자가 되었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아내를 조수석에, 세 아이를 뒷자리에 태우고 함께 드라이브를 떠나는 것, 그것은 평범한 가장들의 평범한 소망이지만, 장애와 실직이라는 이중의 벽 앞에서 그 꿈은 멀어져 간다.

 

평범함이란 무엇인가? 무엇에 의해서든, 우리는 오래간 무의식적으로 평범함을 구축해 왔다. 정상성, 혹은 평범성은 한국사회에서 비장애인중심의 사회로 건축되어 왔다. 가부장제 속에서 생계를 책임지는 아버지, 가족 구성원의 살림과 지지를 감당하는 어머니, 그리고 그런 부모에 대해 존중의 마음을 갖는 자녀. 이 평범한 정상가족의 형태가 우리 사회의 대를 이어 오고 있다. 비장애인으로서 생애주기를 거치며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도시 사회에서 벗어나 시골에서 안락함을 꿈꾸는 것은 인간 사회의 평범한 정상의 모습으로 상정되어 왔다. 많은 경우 그 평범한 모습을 꿈꾸고,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경쟁의 과정을 견뎌 내고 있다.

 

그러나 그 평범한 욕망, 사랑하는 가족과 안락한 미래를 꿈꾸는 것은 누군가에겐 허황된 소망인 동시에 불가능한 시련으로 놓이고 만다. 로사 가족의 이야기는 그 평범한 정상에의 욕망이 어떻게 탈락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그린다.

 

장애인 아버지를 둔 가족이 겪는 ‘평범한’ 일상은 비범한 인내와 돌봄의 연속이다. 로사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이 영화는 그런 일상의 무게를 단조롭게 전하기에, 우리는 이 ‘뻔한’ 일상에서 어떤 고유함을 찾을 수 있는지 묻게 된다. 아버지를 위해 밥을 차리고, 말벗이 되어 주며, 함께 시간을 나누는 일은 ‘딸’이 수행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그 부조리한 사회를 그리거나, 그에 분투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보편적이고, 정상적이고, 평범하다고 여겨져 왔던 그 형상이 사실 환상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사례가 된다. 아버지는 장애와 중증 호흡기 질환으로 인해 위태로운 삶의 시간들을 보낸다.

 

평범한 일상 안에 스며든 희망과 사랑의 조각들을 소중히 담아내고 있다. 아버지는 걷지 못하고, 호흡기 장애로 인해 인공호흡기를 달고 살아가지만 영화는 그 고통에 집중하지 않는다. 고통의 외침 대신 반복되는 호흡기 소리와, 아이처럼 들뜬 아버지의 표정이 이 영화의 톤을 만들어 간다.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배제하고 있는지 찾는 대신, 그런 배제 속에서도 가족이 어떻게 희망을 꺼내 들고 살아가는지를 조용히 증명한다.

 

영화 속 아버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노트북을 다루며 전동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차량을 찾아본다. 그 계획은 구체적이고 조심스럽다. 로사는 그 계획을 응원하면서도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버지는 중증 COPD 환자이며, 발병 후 60개월 이내 사망률이 40%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미 7년째 살아가는 그는 다행히 60%에 해당하지만, 반반의 확률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의 가족들은 여전히 위태로운 불안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사망위험군이라는 진단 결과를 로사는 아버지에게 전하지 못한다. 나아질 거라는 아버지의, 혹은 자신의 희망을 꺾고 싶지 않기에, 차차 나아지리라, 산소호흡기를 뗄 수 있노라 말한다. 눈물을 삼키며 전하는 이 소망이 로사의 가족을 여전히 희망차게 만든다.

 

이 가족에게 비극은 없다. 마스크를 쓰고 외출을 감행하는 아버지, 함께 집터를 보러 가고 중고차를 찾으며 소소한 웃음을 나누는 가족의 모습은 그 어떤 영화적 장치보다 진실하다. <천사와 드라이브>에는 불쌍한 장애인이나 근엄한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는다. 거대한 투쟁이나 슬픔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지켜내는 사람들이다. 차별과 가부장제가 뿌리 깊게 자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도, 그들은 생의 매 순간을 평화롭게 지켜내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휠체어에 몸을 실은 아버지의 드라이브는 그저 상상 속의 장면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여정인지도 모른다.

 

산소호흡기의 바람 소리와 기계음이 영화의 마지막을 채운다. 그러나 그 소리는 죽음의 전조가 아니라 삶이 지속되고 있다는 증거다. <천사와 드라이브>는 그래서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야말로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기록이 아닐까?


홀라당 넘어간

2024 | 17’ | 극 | 유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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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본인의 조현병까지 잘 극복해오던 경미.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정말 필요했던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하지만 곧이어 사기를 당한 듯한 불안감에 휩싸인다.

무너질 듯 흔들리는 마음으로 경미는 그리다센터의 문을 두드리고, 따뜻한 동료들과 함께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다.



인권평

최한별 (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진보적 장애운동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무엇인가. 하나만 꼽기 어렵지만, 그 중 하나에 ‘의료적 모델’이 반드시 들어간다는 말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장애를 ‘치료되어야 할 질병’, ‘비정상의 상태’로 규정하는 시도들을 반대한다. 우리의 몸과 정신은 지금 이대로도 완전하며, 바로잡아야 할 것은 우리가 아니라 손상없는 몸과 마음에만 기준을 둔 비장애중심적 사회이다. 이런 주장을 ‘사회적 모델’이라고 부르는데, 이렇게 수십년간 사회적 모델에 기반해 활동해오던 우리 안에서 “근데 사실 제가 아파서 힘들긴 한데요”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손상때문에 생기는 아픔, 증상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자칫 ‘그래서 결국 장애를 가진 상태는 문제’라는 ‘자백’처럼 들릴까 조마조마한 건 여전히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장애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이 등장한다는 것은 분명 우리가 다음 장을 향해 잘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영화 ‘홀라당 넘어간’은 바로 이 지점에 서있다. 사회적 문제(가족 돌봄 부담, 경제적 어려움 등)를 겪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증상이 발현 또는 심화되는 과정은 사회적 모델에 기반해 있고, 증상의 재발로 인해 우울해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당사자의 심리는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 걸로 보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스트레스와 증상의 심화로 인해 고통받는 당사자를 진정으로 도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 관계, 공동체라는 메시지를 향해 서툴지만 확실하게 나아간다.

 

이 메시지가 우리 사회에 유의미한 이유는 무엇보다 그것이 당사자들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원하는 것은 ‘홀라당 넘어간 마음’ 때문에 힘들고 혼란스러운 순간,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 머리를 맞대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기도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무엇보다 그들 역시 홀라당 넘어간 마음을 갖고 있기때문에, 당사자의 마음과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위로도 조력도 제안도 당사자에게 힘이 된다. 즉, 힘있는 연대의 근거가 바로 홀라당 넘어간 마음인 것이다. 이 힘을 누가 함부로 ‘비정상’이라 말할 것인가.

 

2023년 기준 정신장애인은 약 10만명 이라고 한다. 10만 명이 고립만 되어 있다면10만 개의 외로움이 만들어질 뿐이지만, 이들이 서로 모인다면 10만 개의 연대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자꾸 정신장애인들이 서로 힘을 모으는 공간과 시간을 유지하기 위한 예산이 깎인다고 하니 걱정이다. 홀라당 넘어간 마음들의 연대를 허하라!



개막작

시설 밖, 나로 살기

2024 | 37분 | 다큐 | 추병진


배리어프리 ⭕

시놉시스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20년 동안 살아온 초현은 정해진 대로만 살아야 하는 시설을 떠나자립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시설 안팎에서 초현을 상처 입히는 말들이 계속되고, 이를피해 시설에서 도망치듯 나온 초현은 피플퍼스트 동료들의 지원으로 자립생활주택에서살게 된다. 자립생활이 쉽지만은 않지만, 시설 밖에서 당당하고 떳떳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초현은 자신의 탈시설·자립 경험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얼마 후 초현과 동료들은떨리는마음을안고국회로향한다. 탈시설한 발달장애인 당사자로서 국정감사에 출석한 초현은 어떤 이야기를 준비했을까.


인권평

이정한 (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영화의 오프닝은 '박초현은 누구인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며 시작된다. '누구인가'와 '어떤 사람인가'는 다르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그 사람의 이름, 장애 유무, 성별과 같은 ‘사회적 정체성’을 묻는 질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질문한다. ‘박초현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는 그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보다는, 그 개인의 고유한 면을 찾는 질문이다. 그는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 사람의 내면을 찾는 질문인 셈이다.

 

### 1.

 

영화는 표창장 수여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는 고급스러운 행사장에서 정갈한 옷차림으로, 또박또박한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상을 받는다. 시설에서 받은 인정, 시설에서 받은 상. 초현이 그 상을 받고 향하는 곳은 다름아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열리는 마로니에 공원이다. 박초현은 어떤 사람인가, 에 대한 대답이다. (그리고 그는 3.26전국장애인대회의 탈시설장애인상을 받았고, 시설에서 받은 ‘모범 장애인상’을 찢어 버렸다.)

 

초현은 7살에 시설에 들어가 26살까지 살았다. 스무 살 무렵부터 시설에서 나가고 싶어했지만, 체험홈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통제의 공간에서 머물러야 했다. 자립을 '체험'한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자립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단상에 올라 ‘올해 안에 자립하겠다’고 다짐한다.

 

그 다짐의 이유는 시설이 가한 반복적인 괴롭힘 때문이다. 시설은 자립하겠다는 초현에 대해 무람없이 다그치고, 결국 탈시설해 활동하는 데에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퇴소식을 한다면서도 그 일정은 모두 시설의 통제 속에 있다. 옆에서 지켜보며 긴 시간 그의 자립을 지지해 온 피플퍼스트 박경인 역시 초현이 당하는 그 괴롭힘을 절실히 목격한다.

 

이 '목격'은 개인 간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하나의 운동을 만들어내는 강한 기반으로 작동한다. 자기 집 소파를 내어 준 하은, 지친 초현을 살핀 정원, 장난스러운 말들 사이로 그를 위로하는 피플퍼스트 성북센터 동료들… 그들의 목격, 그 목격 이후의 지지와 연대가 초현의 자립을 함께 만들어 갔다.

 

평범한 삶에 도달하기 위해선 수많은 '비범한' 연대가 필요햤다. 하지만 이것이 개인 간의 사적 관계로만 이뤄져야 한다면, 그것은 사회의 책임 방기로 귀결된다. 장애인을 시설에 가둘 때는 조력이나 지지 없이 결정이 내려지지만, 탈시설에는 공동체 전체의 연대가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그들'을 어떤 방식으로 분리하고 배제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시설 밖 '나'로 살기 위해선 많은 '너'들이 필요했다. 피플퍼스트 성북센터의 가영, 대현, 바다, 태준, 하은, 정원, 기백, 찬빈, 지연… 모두가 그의 동료였다.

 

누군가는 이러한 연대에 대해 ‘도움받아야 하는 증거’라고 제기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지겹도록 답하고 있다. 세상 누구도 도움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우리는 누구나 서로의 지원과 지지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지역사회’에 살겠다는 선언은 ‘나’로서 ‘너’를 지원하고, ‘너’의 연대로 ‘나’의 삶을 꾸려가겠다는 선언이다. 초현이 탈시설한 뒤 열렬한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 그는 가장 확실한 자립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 2.

 

국정감사의 시간. 밥을 먹고, 하품하고, 하루 종일을 기다리고도 초현의 차례는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종일을 기다리고서야 서미화 의원의 질문이 시작된다. 우리는 그의 국정감사 증언 영상을 수없이 봤지만, 다시 한번 피플퍼스트 성북센터 동료들과 함께 손으로 입을 가리며 긴장감을 애써 참는다. 준비한 원고를 또박 읽어 가는 초현의 단호함은 내 떨림을 무색하게 만든다. 그가 겪었던 여러 위협과 어려움을 차분히 발언할 때, 우리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만다.

 

그리고 우리는 돌아본다. 몇날 며칠을 컴퓨터 앞에 앉아 답변 원고를 써내려갔을 그 시간들을. 체험홈을 거치고 자립주택을 지나 내 명의로 계약된 임대 주택을 얻기을 때까지의 그 지난한 과정들을. 탈시설의 투쟁 현장에 환한 웃음으로 나타나서도 발언할 때면 엄중히 전하는 그 단호함을. 우리는 초현이라는 인물을 발견하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그가 전하는 이야기 속의, 여전히 시설에 남은 ‘언니, 오빠’들을 그린다. 지긋지긋한 거주시설의 통제에서 벗어나고도 여전히 동료들과 지역사회에서 함께하고자 하는 그 부채감이 그의 자립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감사에서 그는 말한다. "저는 제가 생각보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시설보단 지역사회에서 사는 걸 원해요." 사람들이 그의 장애 정도를 보고 '저 정도면 잘 살 수 있다'고 판단하는 현실은, 장애인의 삶을 제대로 보지 않으려는 편견이다. 그의 말처럼, '나도 못 산다. 그러나 시설보다는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 이것이 진짜 발언권이다. "나는 잘은 아니더라도, 살아남고 있다는 걸 시설에 보여주고 싶다." 여전히 초현은 그 증명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국정감사장, 그는 8시간을 기다린 끝에 증언대에 섰다. "나를 20년 동안 시설에 살게 한 사회에 사과받고 싶습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떨림 없는 단호함이었다. 발달장애인의 목소리를, 우리는 왜 이토록 오랫동안 듣지 않았던 걸까.

 

### 3.

 

연말, 그는 눈을 감고 2024년을 회상한다. 세상 다 산 노인처럼 한숨을 푹 쉬면서도 그는 주저 없이 말한다. "2025년 소망은 자립하기예요." 자립주택에 살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자립’을 꿈꾼다. 자기 이름으로 계약된 집을 갖는 것, 나의 공간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꾸미는 것, 내 개인 공간에 사람을 초대하는 것, 이 모든 것을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꿈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 거주지의 공간을 넘어,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직접 만들어가는 완전한 ‘자립’을 꿈꾸기 때문에 그는 ‘탈시설 후의 자립’을 여전히 소망하고 있다.

 

영화는 그 간절함을 전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영화가 끝난 뒤, 그는 이미 그 꿈을 넘어 더 큰 삶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시설 밖의 ‘나’는 영화가 끝난 뒤에 더욱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다. 초현은 2025년 1월 자신의 이름으로 계약한 집으로 이사했고, 자신이 결정한 첫 번째 생일을 4월 9일에 축하했다. 동지들과 함께, 당당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토록 빛나는 삶이 지역사회에 있으니 어찌 탈시설 운동에 함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니 나도 분명하게 말한다, 탈시설 붐은 온다!

 


폐막작

희망의 기록2 : ‘나’를 찾는 시간

2025 | 33분 | 다큐 | 민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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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20년, 30년 혹은 그 이상 장애인거주시설의 이용인으로만 불렸던 이들이 대구지역 주민으로 지역사회에 등장했다. 최중증장애, 무연고, 장기간의 시설 경험을 가진 9명의 탈시설장애인. 지역사회에서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한 9인과 지역사회는 서로가 낯설다. 9인 개개인의 터전을 새롭게 세우는 과정, 일상을 구성하는 과정은 삐걱거림의 연속이다.시설에서 나온 9인은 ‘관리’와 ‘ 보호’의 대상에서 벗어나 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함께‘나’의 일상과 관계를 찾아간다. 탈시설 장=-ㅔ0인 9인의 삶의 변화는 당사자를 비롯해 거주시설 종사자, 지원자, 그리고 지역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인권평

모든 탈시설장애인의 욕구이자 비장애인이 획득할 언어
하민지 (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민아영 감독이 3년 만에 <희망의 기록2>를 선보였다. 2022년, 박종필상을 수상한<희망의 기록>은 대구시립희망원 탈시설장애인 당사자 9명의 삶을 관조했다. <희망의 기록2>에는 9명의 일상을 지원하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주로 등장한다. 두 편의 작품은 6년이라는 긴 촬영시간을 거쳐 완성됐다.

<희망의 기록2>에는 탈시설장애인의 삶과 지원자의 인터뷰가 교차로 나오는데, 지원자는 당사자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부터 파악한다. 수용시설에서의 삶은 집단으로 획일화되기 때문에 ‘나’라는 사람을 스스로 파악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따라서 지원자는 탈시설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해 개인화 작업부터 한다. 이런 작업은 단순히 일방적 전달체계로 분류되는 ‘복지’가 아니다. 지역사회에 처음 나온 탈시설장애인과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을 같이 살아내기 위해 하는 일이다. 이웃, 동료, 친구가 되는 과정이다. 수용시설이 복지의 탈을 쓰고 개인을 삭제했다면, 탈시설은 ‘같이 살자’는 목표로 개인을 파악한다. 언젠가 이런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시설에서 28년을 살고 탈시설한 이상우 씨의 이야기다. 그는 시설에 살 때만 해도 이런 생각을 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과 함께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데 탈시설한 후 여러 비장애인 동지와 함께 지내며 “이제 비장애인도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길 원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한다. 그리고 상우 씨는 이렇게 말했다. “비장애인이 계속해서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길 바라면 좋겠다”고. <희망의 기록2>는 모든 탈시설장애인의 욕구이자 욕망이며 이는 기본권으로 불려야 마땅하다. 영화 속 인터뷰이처럼 이제는 비장애인이 먼저 말해야 한다. 시설 속에 갇힌 장애인과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고 싶다고. 보통의 비장애인에게는 도시와 동네와 골목에 어느 날 등장한 탈시설장애인이 낯설지 모른다. 이런 사람들에게 <희망의 기록2>가 “같이 살자”는 언어를 틔워주길 소망한다.



기획작

만나다 배우다 얻다

2024 | 23’ 51“ | 다큐 | 황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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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나는 그냥 학교에 안 가는 건가보다 했어요”

학교에 데려가는 사람이 없어 오랜 시간 집 지키는 사람으로 살았던 장애인이 있다. 야학은 단순히 장애인이 공부하는 건물을 넘어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배우고 사람을 얻는 공간으로 발전한다. 그 과정에서 전국의 야학을 구성하는 행위자들이 있다. 공간, 사람 그리고 예산과 법. 장애인 야학을 꾸려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남’, ‘배움’, ‘얻음’. 세 가지 카테고리로 구분하여 들어보자.



인권평

정성철 (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교육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포함해 다양한 것들을 배우는 과정이자 수단이다. 국가는 구성원들에게 교육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고, 사회에서 교육은 권리라고 쓰고 읽힌다. 한국은 급격한 경제성장과 함께 고등교육 이수율과 대학 진학률이 높아졌음에도 교육권이 모두에게 작동하지 않는 나라다. 가난한 집 그리고 여성의 경우 초등교육조차 받기 어려웠던 삶은 서적 속 역사가 아니라 지금 우리 곁에 존재하는 이들이 겪어 온 일상이다. 그리고 그 가장 아래에 장애인 교육권이 위치해 있다. 무상교육이 확대되어왔음에도 여전한 시설 중심의 복지체계로부터 장애인은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당한다. 가족에게 맡겨진 돌봄과 입시 중심의 교육체

계는 장애인을 교육의 현장 바깥으로 밀어낸다.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20주년을 맞아 제작된 <만나다 배우다 얻다> 영화는 장애인 야학의 일상을 통해 교육이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깨지고 배우며 나와 관계를 형성하고 사회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수단임을 보여준다. 또 입시 중심의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에 담긴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활동지원사, 장애인콜택시, 엘리베이터와 같이 진보적 장애운동이 성취해 온 성과를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국가와 사회가 제공하지 않은 지역사회 내 장애인의 공간을 만들기 위한 작은 움직임들이 만나서 확장하고 연결되어 부족하나마 지금에 이르렀다. 장애인 야학에 학생으로 나왔던 이들이 진보적 장애운동의 활동가로 역할하며 사람과 공간을 넓혀왔기에 가능했다. 이 싸움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간 시설이 없어지는 날, 장애 유무를 막론하고 지역사회에서 모두가 함께 교육받는 날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또 언젠간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을 요구하는 주류 교육질서에 작게나마 균열을 내는 순간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권리를 생산하는 노동자입니다 

2024 | 17’ 32“ | 다큐 | 황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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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여기 꿋꿋하게 노동의 현장을 지키는 노동자들이 있다. 경기도 시흥시에 위치한 두리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출근하는 노동자들은 저마다의 힘듦이 있지만 노동할 수 있다는 사실 만큼은 소중하게 생각한다.

“캠페인도 일이다” 두리센터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노동자 대혁은 밖에서 ‘장애인도 시민으로’라는 구호를 외치고 권리를 알리는 본인의 일이 즐겁다.

“데모는 힘들지만 사람들 만나서 좋아요” 노동자 은영은 더운 날 거리에 나가 캠페인하는 일은 힘들지만 출근해서 직장동료를 만나고 교제하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서 텔레비전보는 건 심심해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통해 처음으로 직장을 다녀본 지영은 집 밖으로 나와 출근한다는 게 행복하다.

“권익옹호 활동과 장애인식개선을 합니다” 민재는 말수는 없어도 자신의 노동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지하며, 꾸준히 노동하고 싶다는 분명한 의사가 있다.



인권평

서한영교 (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니가?

“집에 있었어요. 집에. 테레비. 봤어요. 테레비. 하루 종일 텔레비 보는 게 일이죠. 뭐, 너무 심심해서요 뛰쳐나가고 싶은데, 엄마가 막아서 못 갔어요.”

영화에 등장하는 노동자 지영씨는 말했다. 맞다. 숱하게 들어왔다. 몸도 안 좋은데 그냥 집에 들어가 있어라, 주변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는 저주를 자주 들어왔다. 가만히, 조용히, 얌전히 방구석에 시설 구석에 처박혀 텔레비전나 보며 히히히 거리고 있으라 했다. 지영씨 엄마뿐만이 아니라 온 사회가 장애인들을 막아섰다. 버스, 학교, 열차, 은행, 비행기, 편의점, 식당, 카페 곳곳에 문턱을 세워 장애인들을 턱턱 막아섰다. 장애가 있는 지영씨가 ‘테레비‘ 밖으로 , 현관 문턱 밖으로 나가서 노동한다고 했을 때, 동생은 말했다. “니가?“

-이게?

경제적 ‘쓸모‘를 떠받드는 근대경제학은 장애인을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로 규정했다. 그 견고한 역사 속에서 장애인의 노동은 언제나 “니가? 일한다고?“ 라는 반문을 마주해야 했다. 장애인의 노동은 ‘사랑이 가득한 일터‘로 포장된 재활노동(보호작업장)이거나, 시혜적 복지노동(공공노동)이거나, 노예노동(염전, 쓰레기장, 개농장, 양식장)으로 연상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권리를 생산하는 노동자입니다> 영화 속 노동자들의 노동은 이게? 이런게? 노동이라고? 질문하게 한다. 맞다. 비장애인들이 겪어온 노동의 긴 목록들 중에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수행하는 노동을 노동이라고 불러본 적 없다. 동네시장에 나가 상인들에게 UN장애인권리협약문을 전달하고, ‘차별 없는 명절 맞으세요‘ 인사하며 평등캠페인을 진행하고, 북치고 노래하며 공연노동을 수행하고, 그림을 그리고 발표하는 일을 두고 “이것도 노동이다”라고 할 때 , 다소 당황할 수 있다. 맞다. 기존 노동을 의아하게 만드는 노동, 노동의 개념에 도전하는 노동, 장애를 둘러싼 사회적 감각의 배치를 이동시키는 노동, 바로 “권리를 생산하는 노동“이다.

-이것은 복숭아입니까?

이것은 “황도 복숭아입니다“ 영화 속 노동자 민재 씨는 분홍과 노랑, 주황과 하양의 색깔들이 서로를 침범하며 번져있는 그림을 쥐고서 말한다. 이것은 복숭아이고, 이것도 노동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입증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권리와 투쟁‘으로 빚어낸 중증장애인 노동의 가능성을 한 장면, 한 장면 조각모음하듯 배치한다. 극복-재활-보호 노동에서는 등장할 수 없는 권리중심-중증장애인의 노동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이야기와 이미지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한 조각, 한 조각 보여준다.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저마다의 경험과 느낌들을 조각모음하며 각자의 질문을 조직하게 한다. 복숭아란? 노동이란? 생산이란? 예술이란? 권리란? 어떤 것인가?

 

머릿속을 떠들썩하게 한다. 세상을 바꾸는 권리중심 노동은 기존에 익숙한 장애/비장애를 둘러싼 언어의 배치를 떠들썩하게 한다.

-떠들썩 노동

“풍악을 울려라 온 세상 떠들썩하게” 영화 속 노동자 대혁씨는 북을 치며 노래한다. 대혁씨의 노래 가락에 맞춰 중증장애인들의 노동이 전국방방 곳곳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서울에서 시작된 <서울형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는 경기, 경남, 강원, 전남, 전북, 인천, 광주 서구, 춘천, 제천, 부산...전국 각지로 떠들썩하게 번져나가고 있다. 권리중심 노동은 유례없는 미래를, 전례 없는 노동을 수행해 나가며, 견고한 현재를 이동 시켜나가고 있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비장애중심 ‘노동’에 포함(인정, 포용)되는 것뿐만 아니라, 다층적 시민-존재자들의 ‘고유함’을 바탕으로 둔 노동, 권리를 옹호하는 노동, 공공의 가치를 실현하는 노동, 권리를 생산하는 노동을 통해 “온 세상 떠들썩하게“ 질문하고 있다. 이 떠들썩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이가 있다. 바로,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최중증장애인노동자 400명을 일시에 해고한 것이다. 영화 속 노동자 대혁씨는 권리중심일자리를 폐지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조언한다. “없애지 말고요. 키우세요. “대혁씨는 덧 붙인다. “오세훈 시장은 뭐였지? 오세훈 시장은 건강하게 살아라! 오세훈 시장은 퇴진하라! 투쟁!“ 이제, 온 세상 떠들썩하게 최중증장애인노동자 해고복직투쟁의 풍악이 들리는 듯도 하다. 풍악을 울려라 온 세상 떠들썩하게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