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 있는 집

감독 장주영 | 2022 | 다큐 | 6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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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관악구 신림동에 거주하고 있는 두 사람은 발달 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오랫동안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살다가 2020년부터 독립한다. 한 문장으로 정리된 이들의 독립 과정에는 사건사고가 많았다. 작품은 두 사람이 지역사회로 나와 독립한 현재와 한때 거주했던 비상구 있는 집을 마주 보며 삶의 가치를 조명한다.


인권평

<비상구 있는 집>

-장호경(2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

비상구는 화재나 지진 따위의 갑작스러운 사고가 일어날 때에 급히 대피할 수 있도록 특별히 마련한 출입구를 말한다. 우리가 사는 집에는 비상구가 없다. 하지만 비상구가 있는 집이 있다. 장애인거주시설이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다 지역 사회로 나온 민식, 용찬. 용찬은 네잎클로바 찾기의 달인이다. 20대 초반부터 40대 초반까지 완전 격리된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생활했다. 민식은 인간미 넘치는 4차원이다.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의 피해자. 이들은 탈시설 협동조합인 도란도란에서 다른 탈시설 장애인들, 지원자들과 함께 노동하며 일상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들의 시설에서의 역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너무 멀리 있는 이야기들이다. 감금, 폭력, 착취, 인권침해... 시설에서의 이야기를 담담하지만 힘있는 어조로 풀어내는 두 사람. 도란도란 탈시설 협동조합은 자립을 해도 남남이 되는 게 아니라 이웃으로 살 수 있게, 인근에서 집을 얻고 같이 만나자던 약속을 이어나가고 있다.

“장애를 가졌다고 왜 시설에서 살아야 돼?”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탈시설 운동이 시설 안의 삶을 폭로하고, 시설을 더 나은 환경으로 변화시키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시설을 우리 사회에서 지우고 장애인들의 삶을 지역사회로 이동시키는 운동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자기 결정권이 침해된 공간, 통제와 분리가 있는 공간. 좋은 운영자가 있어도 장애인의 삶은 바뀌지 않는다. 이 영화는 비상구로 상징화된 시설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묻고 있다. 그리고 좋은 공간이란 좋은 삶이 깃들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자유롭게 선택하고 성공하고 실패도 하고, 그저 내가 내 삶을 사는 것이 좋은 삶이라 말한다.

영화는 계속해서 민식, 용찬의 집과 비거주 건물의 비상구를 교차하여 보여준다. 마치 이곳이 집이라 말할 수 있는가를 묻는 듯 하다. 비상구 표식 속 달리는 사람의 아이콘처럼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비상구가 있는 집은 집이 아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

감독 이쉬트반 체르벤카 | 2022 | 다큐 |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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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내 인생은 나의 것”은 신뢰하는 사람들의 지지와 헝가리의 발리더티 재단이 제공하는 무료 법률 지원을 받으며 자립하여 살아가는 피스티의 변화를 그린다. 이 영화는 헝가리 장애인 시설에서 30년을 보낸 후 피스티가 진정한 자립을 얻기 위해 직면한 법적, 사회적 장벽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그가 시설을 떠나기로 결정한 후 피후견인이 되는 위협을 받는 과정과, 그가 법적 권리를 유지하도록 보장하기 위해 취한 법적 조치를 보여준다. 또한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장애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장애인들을 시설에 보내는 제도와 후견제도에 맞서는 발리더티의 활동을 설명한다.


인권평

# 인권평_I am the director of my own institution_내 인생은 나의 것

-최한별(한국장애포럼, 2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영화의 배경이 되는 헝가리는 2020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로부터 ‘장애인의 시설 수용 정책을 지속함으로써 장애인의 권리를 심각하고 체계적으로 침해하고 있다’고 평가받았으며, 장애인 탈시설 정책을 빠르고 인권적으로 추진할 것을 권고받았다. 헝가리가 시설 수용을 지속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거대한 시설을 쪼개서 작은 그룹홈들로 만들고는 ‘자립생활 주택’이라고 위장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장애인에 대한 광범위한 후견제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대규모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을 후견 제도 하에 두어 자기 삶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없게 제약해두고, 후견인은 장애인이 시설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한다-이후 시설을 쪼개어 (대형 시설을 운영하던 법인이 운영하는) 그룹홈으로 이들을 옮기면, 장애인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듣지 않은 채로도 안온하고 매끄럽게 탈시설 완성!…같은 그림을 헝가리 정부는 원했을 것 같다. 하지만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 따르면 ‘백 명이 살든 2-3명이 살든 장애인의 선택권이 보장받지 못한다면 그곳은 시설’인 것을. 아무리 작은 규모의 그룹홈이라 할지라도, 장애인이 계속해서 후견인의 결정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곳은 시설이라고 국제 규범은 이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피스티의 탈시설은 단순히 ‘시설 밖으로 나가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결정권을 온전히 회복하는 것-즉, 식당에서 밥을 사 먹을지, 아니면 내가 해먹을지, 테니스 연습을 빠질지 말지를 직접 정하는 일상을 가지는 것을 의미했다. 이 탈시설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탈시설의 핵심은 당사자를 그 인생의 주인공으로 인정하는 것, 그리하여 그에게 삶의 결정 권한을 되돌려주는 것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임레와 안디, 두 조력자의 진술이 서사를 담당하다보니 자칫 ‘훌륭한 조력자’ 이야기로 읽혀질 수도 있을것 같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개인의 능력과 정체성이 끝없이 무시되는 시설 안에서도 ‘무기력을 학습하지 않았’던 피스티가 없었다면 시작조차 되지 못했을 이야기이기도 하다. 피스티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조력자들을 중심에 둠으로써 피스티를 조연으로 만들지 말 것을 요청한다. 그것은 피스티를 또다시 우리 내면의 시설에 가두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원주택 사람들

감독 정민구 | 2023 | 다큐 | 20분 4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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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침대 생활을 하는 중증장애인 은숙씨, 은숙씨의 무료함을 덜어주기 위해 지원자들은 침대 옆 한 켠에 수족관을 설치했다. 시설에서 지원주택으로 온 뒤 은숙씨를 처음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의료지원이 일상적으로 필요한 은숙씨와 지원자들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지만 제주도 여행 내내 행복해했다는 은숙씨. 

성희씨는 공공일자리 노동자로 취직을 했다. 여러벌의 옷을 번갈아 입어보며 출근 리허설을 한다. 성희씨는 당뇨가 있어 체중 관리, 식단 관리 등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지원자와 소통하며 일상을 챙기는 성희씨.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지원씨. 지원씨의 지원자는 그의 몸짓, 눈빛 등을 어렵게 읽어가며 그의 의사를 살핀다. 지원씨는 지원주택으로 온 뒤 동네 어머님들과 함께 운동을 하기도 하고 야구장에 다녀오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지원주택에는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나와 ‘지원주택’ 이사한 뒤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중증장애인들이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중증장애인이 지역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떤 지원들이 필요하며 그 필요를 읽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원자들이 있다. 지원주택에서 터전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성현이와 정미의 슬기로운 자립생활

감독 손용규 | 2022 | 다큐 | 23분 47초 | 기획·제작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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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자유가 없었던 시설에서 지내다가 탈시설을 꿈꾸며 체험홈에 들어온 성현,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위해 자립생활을 하던 중 반하게 된 첫사랑인 정미와 결혼까지 골인하게 된다. 이후 장기임대주택에 당첨되어 좋은 집으로 이사를 하며 두사람의 알콩달콩한 행복한 결혼생활을 그리고 있다. 또한 공공일자리 및 활동가로 활동하면서 지역사회안에서 함께 살아가며 소소하지만 때론 특별한 슬기로운 자립생활을 위한 두사람만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영화이다.

부부의 사랑스러운 케미가 있는 이야기에 초대합니다.


인권평

어떤 일상 - <성현이와 정미의 슬기로운 자립생활>

-홍성훈 (1인 창작자, 2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프로그램위원)


솔직히 말하자.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복잡한 감정을 느꼈고 그 감정은 신체적인 반응으로 나타났다. 우선, 아랫배가 아파왔다. ‘남이 잘 사는 꼴’을 못 보는 나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기도 한데, 이번엔 좀 심하게 아팠다. 두 번째 반응은 실실 쪼개는 것이었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장면은 상영작들을 미리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인데, 나는 헤드폰을 낀 채로 쿡쿡 웃었다. 그러니까 아랫배가 아파 배를 쥐고 있으면서도 표정은 웃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집에서 영화를 보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곁에서 빨래를 개고 있었던 활동지원사 분이 나를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헛기침을 했다.


<성현이와 정미의 슬기로운 자립생활>은 그런 영화였다. 나에게 하염없는 질투를 유발하면서도 결코 눈을 뗄 수 없는 영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주인공은 성현씨와 정미씨다. 두 사람은 부부인데 몇 년 전 체험홈 교육현장에서 만났고 2년간의 만남 이후 결혼했다. 영화는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자 자립생활을 담아낸다. 성현씨는 안산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활동가로 지역 편의시설의 키오스크 접근성을 조사하고, 지하철 선전전에 기꺼이 참여하기 위해 서울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정미씨 또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에 참여하면서 센터에 나가 노래 연습을 하거나 그림을 그린다. 두 사람 모두 지역사회에서 활발한 활동가로, 또는 자립생활의 파트너로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 모습만으로 질투가 솟지만 성현씨와 정미씨가 서로를 ‘존립’하면서 둘만의 방식으로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장면을 볼 때 장애인의 자립생활은 결코 돈의 액수로 환산될 수 없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성현씨는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한다. 성현씨는 지하철을 탄다. 성현씨는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센터에서 한글을 배운다. 정미씨의 생활은 어떤가? 정미씨는 지역의 ‘장콜’을 이용하여 공공일자리에 참여한다. 동네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성현씨와 동네 공원을 산책한다. 높으신 ‘공무원 분들’의 눈에는 이런 것들이 다 돈으로 보이겠지만 이것은 성현씨와 정미씨의 용기와 슬기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앙상블이다.


물론 성현씨와 정미씨처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만이 장애인 자립생활의 ‘표본’이라고 할 수는 없다. 활동지원사와 함께 생활하거나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는 것 또한 대단한 용기와 지혜를 필요로 하는 일이고 의미 있는 삶이다. 앞으로 성현씨와 정미씨처럼, ○○의 즐거운 자립생활 ○○과 ○○의 매력 있는 자립생활 이야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거짓말

감독 양준서 | 2023 | 극 | 38분 13초 | 기획·제작 지오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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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이봄이라는 인물이 물을 마시기 위해 힘겹게 정수기를 향해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봄'이라는 인물은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또한, '공단직원'만 만나면 많이 유독 떨린다. 센터에서 자조모임을 가지던 이봄은 거짓말을 너무나도 잘하는 '벌구'를 보며 자신이 필요한 '활동지원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거짓말을 비법을 알려달라고 한다. 알려주려던 벌구도 남은 기간을 보며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을 깨닫고, 단기속성 '일타강사'를 소개 시켜준다. '일타강사'의 강의를 들으며 이봄은 어느정도의 거짓말을 해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드디어 D-DAY가 되었다. 공단직원과 마주하는 그날... 과연 이봄은 거짓말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인권평

‘할 수 있음’과 ‘하고 싶음’의 거리

거짓말(양준서)

-이정한(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 2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위원)

 

3년에 한 번씩 받아야 하는 서비스지원종합조사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봄. 그는 뇌병변 장애인으로 혼자서 물을 마실 수 없다. 정수기를 향해 땀을 뻘뻘 흘리며 기어가 보지만 결국 활동지원사가 물을 떠다 주고서야 마실 수 있다.

봄이 활동하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회원들과 마피아 게임을 하는데, 권일은 목숨이라도 건듯이 거짓말을 열정적으로, 또 능수능란하게 한다. 모두를 속여 게임에서 이기자 어떻게 거짓말을 그리 잘하는지 다들 궁금하다. 권일의 거짓말에 특히 큰 감명을 받은 봄은 권일과 따로 만나 ‘거짓말 잘하는 법’을 배워 가며, 바로 이 거짓말을 감쪽같이 해내야 활동지원 시간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생리를 배운다.

며칠 남지 않은 종합조사, 특훈을 위해 ‘일타 강사’ 태민의 강의가 시작된다. 태민의 가르침은 명료하다: ‘할 수 있어도 못 한다고 한다.’ 활동지원 시간을 많이 받기 위해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 위해 내 신체로는 ‘할 수 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종합조사에서 조사위원이 체크하는 항목들이 대부분 ‘할수 있느냐, 없느냐’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목욕이나 옷 갈아입기를 혼자 ‘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일상생활동작 영역, 전화기 사용이나 청소를 하는 등 혼자 물건을 ‘사용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수단적일상생활 영역 등.

3년 동안의 활동지원 시간을 위해 10여 분 동안 그것들을 점검한다. 1842일간의 광화문 농성을 통해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했으나 결국 ‘가짜 폐지’, 즉 제도는 바뀌었으나 이전과 철학을 같이하는 서비스지원종합조사로 인해 여전히 장애인은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받을 뿐이다. 활동지원 시간 많이 받고 싶지 않느냐는 권일의 재촉하는 물음에, 봄은 받고 싶고 필요하다 답하며 가르침에 따라 충실히 거짓말을 연습한다. 활동지원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받아야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전의 날. 조사관이 방문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이들은 순조롭게 잘 이뤄질 것이라는 관객의 예상 속에서, 주인공 봄은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양심에 찔려서가 아니다. 봄이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것은 그 상황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내 일상을 살기 위해, 3년의 삶을 위해 이 기계 같은 존재에게 비참함을 연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그 자체로 비참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연기를 해야만 하는가, 왜 활동지원 시간을 받기 위해 ‘할 수 없음’을 증명해야 하는가.

그래서 봄은 말한다. ‘하고 싶지 않다’고. 이 말이 제도에 대한 핵심을 드러낸다. 서비스지원종합조사는 ‘하고 싶음’에 대한 조사였어야 했다.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당사자의 욕구’를 반영하는 제도를 요구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당사자의 욕구, 즉 ‘하고 싶음’이 아니라 기능, ‘할 수 있음’의 여부를 따지면서부터 이 제도는 장애 당사자로부터 멀리 떠나갔다.

열연과 함께 영화의 주제, 제도의 문제까지 담아 내는 이 시퀀스로 결말을 매듭지었으면 어땠을까. 혼자서는 아무것도 바꿔 낼 수 없는 조사관 한 명의 회심 혹은 반성 정도, 그리고 어쩌면 시혜적인 조사 결과를 내놓음으로써 이 제도의 ‘숨 구멍’을 마련하고야 말았다. 우리가 만나는 서비스지원종합조사는 현실에서 더욱 가혹하고 비참하다.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를 ‘진짜 폐지’로 만들어 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조사관이 양심적이라면 충분한 시간을 받을 수도 있다’는 가짜 가능성을 만들지는 않았는가?

이러한 한편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당사자에게 주어진 한정적 선택지, ‘꼼수’를 통하지 않고는 ‘권리’를 쟁취하기 어려운 현실을 잘 그려 내고 있으며, 양준서는 역시 양준서답게 연출과 음악, 카메라와 호흡까지 섬세하게 다뤄 내고 있다. 이러한 섬세함을 고려한다면 봄의 조사관은 한 명의 개인이 아닌, 한국사회의 변화 가능성의 상징으로 볼 수도 있다. 너무도 단단해 보였던 저 제도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빈틈투성이다. 그러므로 이 제도는 작디작은 임기응변으로만 시혜를 베풀 뿐이다.

희망의 기록

감독 민아영 | 2021 | 다큐 | 31분 | 기획·제작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민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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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천 여 명이 넘는 집단수용시설에서 3~40년간 생존만이 목표인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다. 중증·중복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은 다른 삶의 가능성을 빼앗긴 채, 거주시설에서 생을 연명했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외출할 일도 없는 폐쇄적인 구조 속 폭력과 인권침해는 ‘안전 상 통제’를 명목으로 이루어졌다. 2016년 10월 사회복지시설 대구시립 희망원 내 인권침해, 보조금횡령, 업무상과실치사 등 나열하기도 긴 죄목들이 공익제보자를 통해 드러났다. 장애인거주시설의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지만, 중증·중복의 발달장애인과 함께 살아본 적 없는 지역사회는 ‘자립 능력’을 말하며 이들을 다시 지역사회로부터 분리하려 한다. ‘자립 능력’ 기준은 장애인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향해야 한다며, 중증·중복 발달장애인과 함께 살기를 시작한 이들이 있다. 3~40년의 공백을 넘어 ‘낯선 존재’에서 ‘이웃’이 되어가는 3년의 기록.


인권평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우리 중 그 누가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태어났는가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20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따르면, 시설이란 단순히 물리적 조건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설이란 한 사람에게 집단의 질서를 강요하고, 선택과 자율을 보장하지 않는 ‘문화(culture)’ 그 자체이다. 그렇기에 탈시설은 곧 ‘장애인의 자율과 선택이 존중받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 이 문장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당연한 말이라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라고. 이를 보장하지 못하는 것은 탈시설도 아니라고.

그러나 선언은 깔끔하고 단호하여도, 실천은 다른 문제이다. 영화 ‘희망의 기록’은 바로 이 점을 보여준다. 실천은 긴장감이 팽팽한 공간이고, 지긋지긋한 관계의 되풀이이고, 포기하고 싶은 상대이자, 자괴감을 딛고 일어서야만 하는 매일이다. 판단은 쉽고 말은 선명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엄정한 기준을 가지면서도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기준이 대어지는 공간이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우리 중 그 누가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태어났는가. 우리는 모두 다양한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고, 다양한 곳에 가보고, 때로는 먹기 싫은 음식도 먹어보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음식이 의외로 맛있다는 점을 깨달으며 형성되어 왔다.

‘희망의 기록’에는 대구시립희망원 탈시설 당사자들에게도 이러한 경험들을 (턱없이 부족한 한국 사회의 자원을 끌어 모아) 가능한 한 풍성하게 제공하려 하는 지원자들의 노력이 있다. 그리고 그 노력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보호’의 대상으로 장애인 당사자들을 바라봤던 자신들에 대한 성찰도 함께 담겨있다. 전혀 좋아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반찬을 주저 없이 고르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찬 방에서 저녁밥상도 등진 채 묵묵히 취미생활을 이어가는 ‘구’ 희망원 ‘현’ 대구 시민들의 실루엣은, 그들의 지역사회 자립을 위한 지원인의 치열한 고민의 방향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주인공들이 거주했던 시설의 이름은 ‘희망원 시민마을’ 이었다. 찬란한 단어가 명패에 당당했던 그 공간이, 그 어떤 시민적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던 곳이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본다. 영화는 제목대로, 그동안 분리되어왔던 우리의 동료 ‘시민’들이 우리 사회와 화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기록을 따라간다. 변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사람을 분리하고, 배제해온 이 사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부제: 향유의 집, 시설폐쇄의 과정)

감독 정민구 | 2021 | 다큐 | 30분 | 기획·제작 정민구, 장애와인권 발바닥행동


  • 수어통역 ⭕
  • 자막해설 ⭕

시놉시스

1985년 설립된 향유의집(장애인거주시설)이 폐쇄되며 그곳에서 생활하던 장애인이 동네로 이사 나오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직장이며 누군가의 집이기도 한 시설이 폐쇄되면서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다. 고용승계가 된 직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직원도 있다. 시설을 떠나고 싶은 장애인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장애인도 있다. 시설이 폐쇄된다는 건 우리사회에 어떤 의미일까? 지금까지 동네에 보이지 않던 장애인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는 장애인과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을까? 평생을 시설에서 살아온 장애인이 동네에서 사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네가 내 이웃이었으면 좋겠어

감독 박준형 | 2020 | 다큐 | 15분 | 기획·제작 CBS씨리얼,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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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도

장애인 탈시설 운동의 흐름은 느리지만 분명히 가시화되고 있다. 시설 안 장애인 3만 명이 모두 탈시설을 해 바깥으로 나온다면, 한국은 어떻게 바뀔까 궁금해졌다. 그 질문을 비장애인들에게도 던져보고자, 작품에 등장한 발달장애인 두 청년을 만났다. 이들이 보여주는 일상적인 모습과 생각들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간단히 부숴버린다. 뮤지컬을 좋아하고, 저녁 식사 전 커피 한 잔을 즐기고, 소고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시설 안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길 바라고 있다. 어설프고 사건·사고도 많이 일어나는 일상이지만, 누구인들 겪음직한 하루하루다. 본인의 욕구로 시작되는 하루를 보여주며, 영상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나와 다르지 않은 두 사람이 매일 좀더 잘 살아가기를 마음 모아 응원하게 만들고자 기획했다.


시놉시스

“혹시, 원형 씨가 원하는 퇴소인가요?” “네!”

어느 겨울, 20여 년간 발달장애인을 위한 시설에서 살았던 원형 씨(23)와 석원 씨(24)가 ‘탈시설’을 했다. 본인의 명의로 집을 계약하고, 전입신고도 했다. 시설 밖 자립은 쉽지 않다. 예산을 정해서 장을 봐야하고, 직접 요리해서 밥도 먹어야 하고, 변기가 말썽이면 고쳐야 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챙길 수 있는 세상은 이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다. 어느 날, 석원 씨는 원형 씨에게 집들이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인권평

네가 내 이웃이었으면 좋겠어

- 유지영 | 19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위원

“혹시 원형 씨가 원하는 퇴소인가요?” “네! 제가 원해서 하는 겁니다!” 20여 년간 발달장애인 시설에서 살다가 ‘탈(脫)시설’을 앞두고 진행된 퇴소식에서 원형 씨는 당당하게 “제가 원해서 합니다!”라고 말하고는 이내 쑥스럽게 웃는다. 모든 게 처음이다. 이사를 하면서 책상과 침대를 나른다. 집을 계약하고, 전입신고를 한다. 전입 사유를 적으라는 주민센터 직원의 말에 어리둥절한 원형 씨. “이거 사유를 뭐라고 체크해요?” 원형 씨의 ‘탈시설’은 여느 성인들의 첫 자취 경험처럼 설렘이 묻어난다. 직접 장을 보고 요리를 해서 밥상을 차리는 것도 물론 필수다. 아참, 소고기가 비싸서 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마저 공감의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비단 원형 씨 혼자만의 것은 아니다. 모든 이들의 ‘홀로서기’가 그렇듯 원형 씨는 온전히 혼자서 설 수만은 없다. ‘네가 내 이웃이었으면 좋겠어’라는 다정한 제목에 걸맞게 원형 씨의 이웃집에는 그와 같은 시설에서 살던 동료들도 이사를 온다. 원형 씨의 집에는 그의 탈시설을 응원하는 이들이 드나들기 시작한다. 원형 씨는 이들을 위해 ‘집들이’를 기획하기로 한다.

영화는 원형 씨의 탈시설 이후를 비교적 담담하게 그리고 있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다. 탈시설을 해낸 지금이 좋지만 동시에 자신이 자랐던 시설을 그리워하는 원형 씨의 양가감정이 그려지면서 다큐멘터리는 비로소 입체성을 갖게 된다. 처음 집을 구했다는 달뜬 설렘은 잦아들고 시설에서의 시간이 틈을 놓치지 않고 원형 씨를 찾아온다. 원형 씨의 탈시설은 아마 그 날부터 시작일 것이다. 우리가 이 영화의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고 주목해서 봐야 하는 이유다.


길가의 풀

감독 시시도 다이스케 | 2018 | 다큐 | 95분 | 기획·제작 길가의 풀 제작위원회


  • 수어자막 ⭕

시놉시스

일상 공간이 한정된 사람들이 있다. 자폐성 및 중증 지적 장애가 있고, 자해·타해 등 행동장애가 있는 사람. 세상과 선을 긋고 울타리 안에 가로막혔다. 이런 폐쇄된 세상을 경쾌한 스텝으로 무너뜨린다. 도쿄 거리에서 활동지원사와 함께 자립생활을 하는 사람들. 민들레 솜털을 날리고, 그네에 흔들리며 계절을 활보한다. 활동지원사와 다투는 것은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심각하다. 외치며 내려가는 주먹에 전하기 어려운 생각이 스며든다. 관계한다는 것은 힘들지만, 관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움츠러진다. 그래서 사람은 또 사람에게 다가간다.


나의 집으로

감독 아영 | 2020 | 다큐 | 25분 | 기획·제작 아영,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 배리어프리 ⭕

기획의도

시설 밖의 삶은 안정적일수도 없고, 많은 일들이 일어나겠지만 그것이 두려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시설 거주 생활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사회의 무례함에 함께 싸우고 투쟁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견고한 생존과 온전한 일상이 어차피 혼자서 이뤄질 수 없는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한 걸음의 용기를 서로가 나누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의 존재가 사회를 바꿔나갈, 행동할 수 있는 서로의 동력이 되었으면 한다.


시놉시스

2009년 석암베데스다요양원(현 프리웰) 속 인권유린을 폭로하며 나온 마로니에 8인방은 탈시설 운동에 전환점을 맞게한 투쟁이었다. 그러나 마로니에 8인방과 함께 활동 했던 1명의 생활인이 더 있었다. 그러나 국가가 가족에게 부여한 규범은 그를 시설로 가두었다. 너무나 자유를 원했고, 지역에서 살아가길 원했으며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했던 그가 드디어 2019년 12월 지역사회로 나오게된다. 그렇게 갈망했던 내가 계획하는 삶을 만들어가는 이들의 이야기.

"미래를 생각하며 투쟁하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이렇게 될 줄 알고서 했겠어요? 그 당시 절박하니까 했던 거지."


그저 함께 살아간다는 것

감독 아영 | 2019 | 다큐 | 25분


  • 배리어프리 ⭕

기획의도

공동 거주, 집단 지원, 규율과 규칙, 통제를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어온 집단 수용시설 대구 시립 희망원. 그곳에서 2010년부터 2016년간 309명의 생활인이 죽어 나갔다. 연례행사처럼 매해 터져 나오는 집단수용시설의 비리와 인권침해 사건들. 범죄 시설이 발생할 때마다, 부딪히는 이야기들.

"중증의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해요?" "시설을 선택하는 것도 자기결정권이에요!"

시설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 복권 긁듯 '좋은 시설'을 찾는 것은 왜, 장애를 가졌거나 노쇠했거나, 돌봄 지원이 필요한 이들에게만 향하는지.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동정'과 '시혜'를 통한 혐오이지는 않았는지. 중증장애인에게 안전하지 못한 사회라면, 그 누구에게도 안전하지 않은 사회인 것은 아닌지.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같이 고민하고 상호 의존하며 상상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우리는 되질 문해야 한다.


시놉시스

2016년 감금, 폭행, 횡령 등 숱한 비리가 드러난 대구 시립 희망원. 범죄시설 속 생활인들에게 이전 조치가 떨어졌다. 3~40년간의 지역사회 속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 '지역에서 사시겠어요? 다른 시설로 가시겠어요?'라는 무책임한 '자율권'을 들이민다. 그러나 이 '자율권'조차도 법적 보호자가 없고, 의사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다시 시설에 들어갈 위기에 처한 9인이 있다. 지역사회 속 삶을 부대끼는 경험을 해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152일의 농성 투쟁을 통해 시작된 '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의 탈시설 시범사업'

30~40년간의 삶의 공백을 되찾기 위해 지역사회로 향한 중증중복 발달장애인들의 고군분투 자립 생활기. 부실한 사회서비스 체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9명의 자립기는 위태롭게 보이지만, 발랄하다. 만날수록 도통 모르겠던 표현이 뚜렷해지는 이 매력적인 사람들은 오늘도 자신을 드러내며 세상을 향해 함께 살자며 외치고 있다.


시설장애인의 역습

감독 박종필 | 2018 | 다큐 | 54분


  • 배리어프리 ⭕

시놉시스

"우리를 시설에 가두지 마십시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또 다른 ' 감옥'인 시설을 박차고 나와 '자립생활'을 요구한다. 서울시로부터 자립생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받지만, 서울시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서울시에 항의하는 8명의 농성 장애인과 연대단체의 끈질긴 투쟁이 이어졌고, 마침내 작은 결실을 맺는다.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살던 여덟 명의 장애인이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한다. 비리시설인 석암재단의 민주화를 위해 일 년 넘게 투쟁했던 장애인들이 이제는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인간답게 살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자립주택을 제공하라! 탈시설 5개년 계획을 수립하라! 활동보조 시간 확대하고 대상 제한 폐지하라! 서울시만 해도 70%의 시설 장애인이 퇴소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할 여건이 되지 않아 많은 장애인이 시설 안에서, 그리고 시설보다 더 시설 같은 골방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08년 12월 말 장애인과의 면담을 통해 자립 생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이에 8명의 농성 장애인과 연대단체의 62일간의 끈질긴 투쟁에 결국 서울시는 2010년부터 자립생활가정을 시범사업하고, 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를 설치하여 시설퇴소 장애인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다. 결국 여덟 명의 장애인은 농성을 풀고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