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선정작

<소리의 소리>

소리의 소리 | 2025 | 28’ | 다큐 | 한소리



 

시놉시스


내 이름은 소리다. 한소리의 소리는 엄마의 소리를 잘라낸다. 엄마의 소리를 튕겨내고 끊어낸다. 외할아버지 장례식이 끝난 직후 내가 뱉어낸 소리는 엄마를 괴롭혔다. 외할아버지와의 이별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무시하는 소리의 폭력. 사과는커녕 오히려 더 뻔뻔하게 던져지는 소리.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엄마를 할퀸다. 이별의 슬픔을 이겨내고 씩씩하게 웃으면 한다는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하고, 엄마를 위한 선택이었다며 내가 행한 소리의 폭력을 정당화한다. 위로를 가장한 그 소리를 엄마는 또 잘 들어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 앞에서 나의 소리를 소거하는 일이다.




인권평


방향이 돌려진 카메라가 찍은 것은

-홍성훈 (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길혜에게는 소리가 있다. 길혜는 (주로) 소리를 통해 타인 혹은 세상과 소통한다. 그녀에게 상대방의 말은 곧바로 감각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길혜의 말이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경우는 드물다. 역시 소리를 통해 전달된다. 얼핏 들으면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길혜에게는 소리라는 매개자가 중요하다. 눈치챈 이도 있을 텐데, 길혜의 딸 이름은 ‘소리’다. 그리고 길혜는 구화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이다. 그러니까 딸 소리는 엄마 길혜의 말을 상대방에게 전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말을 엄마에게 정확한 입모양으로 전달함으로써 엄마와 세상을 이어주는 통로 역할을 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든 유효한 사실일까? 딸이자 영화를 제작한 한소리 감독은 이전 작품 <주고받는 노력>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출품작)에서 이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소리의 소리>는 질문에 대한 또 다른 답변이라고 볼 수 있다.

2024년 12월 3일,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시민들의 일상은 멈췄다. 대통령의 탄핵선고를 앞두고 있지만 한밤중에 벌어진 계엄령 사태는 우리가 아직도 불면증을 겪고 있는 원인이 되었다. 그것은 길혜-소리 모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모녀는 만약계엄령이 지속되었다면, 일상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이야기한다.

소리: ‘계엄령 합니다’ 했잖아. 너무 무서웠지?

엄마 대화 어떻게 할 거야?

엄마: 대화?

소리: 응

엄마: 가만히 있으면 되지.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길혜의 말에 소리는 한바탕 웃어넘긴다. 이어서 길혜는‘가만히 안 있으면 죽어.’라고 말한다. 이날의 대화는 둘의 웃음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소리에게는 여러 번 곱씹는 장면이 된다.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태도에는 길혜 자신이 필요하는 것을 요구하면 주변 사람들이 피곤해한다는 경험이 녹아있는 듯하다. 소리는 혹시 그 ‘사람들’에 본인이 포함되는지 의심한다.

그런 의심을 증폭시킨 것은 길혜의 아버지의 죽음(그러니까 소리에게는 외할아버지), 그리고 장례식이었다. 길혜는 장례를 치르고 난 이후에도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고 낙담한다. 소리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언제까지 슬픔에 빠져 있을 것인지 묻는다. 하지만 길혜는 말없이 걷기만 한다. 길혜의 생각과 마음은 표정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한편 소리에게도 외할아버지의 죽음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다. 소리는 엄마 길혜 대신 외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말을 들을 수 있고, 건넬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것은 중환자실로 소리를 들여보낸 길혜의 의지이기도 했다. 소리는 그런 길혜에게 이제 그만 슬퍼할 것을 권유한 것이다.

소리는 길혜의 애도를 중지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는지, 세상과 길혜를 연결해준다는 자신의 ‘소리’가 되려 길혜의 고유성을 드러낼 기회를 차단하지는 않았는지 성찰하기 위해 길혜를 찍던 카메라를 자신에게 돌린다. 그리고 길혜에게도 카메라를 건넨다. 과연 방향이 돌려진 소리의 카메라, 길혜가 찍은 카메라는 무엇이 찍혔을까? 직접 확인해보기를 바란다.




제작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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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장길혜, 한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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