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기획작



벽을 넘은 목소리    

벽을 넘은 목소리 | 장호경 | 다큐 | 2025 | 60분 



 

시놉시스


2024년 11월 초, 장애인 거주시설 태연재활원에 살고 있는 한 거주인의 가족이 그의 갈비뼈가 부러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폭행을 의심한 가족들은 CCTV를 확인해보았다. CCTV로 확인된 1개월간의 학대 정황 850여건. 경찰 수사 결과 학대건수 346건, 피해자 29명, 가해자 21명. 단 한번의 의심이 꺼내놓은 진실. 닫힌 문 안에서 일상이 된 폭력은 CCTV를 통해 아무말없이 기록되었다.  이 영화는 울산의 대형 장애인 거주시설인 태연재활원에서 일어난 학대사건의 피해자와 그 부모의 목소리를 통해 대형 거주시설의 문제점과 사회적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인권평

- 최한별(2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일어나는 학대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벌써 수십년 째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억울하다‘고 합니다. 시설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많은데, 소수 사람들의 잘못 때문에 다같이 욕을 먹는다는 겁니다. 아마 3년 전이었다면 울산태연재활원 직원들도 그렇게 말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울산태연재활원은 “하버드”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서도 최고 시설, 엘리트 시설, 그래서 장애인이 들어가려면 몇 년이고 대기까지 해야하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해요. 마치 미국 교외 주거단지처럼 꾸며져있는데다, 지역의 대단한 정치인이 설립한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곳이라니,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자녀가 이 곳에서 사는게 더 좋은일이라고 굳게 믿었을 겁니다. 여기서 일하던 직원들도 그랬겠지요. 분명, 자부심을 가지고 성실과 애정으로 장애인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경찰의 초기 조사를 통해서만 장애인 학대 피해가 총 346건, 가해자는 21명, 피해자는 22명이나 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고 박동수님은 태연재활원의 방임으로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었지만, 피해자 명단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고, 경찰이 미처 조사하지 못한 CCTV 사각지대에서 어떤 일이 더 일어났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마 가해자와 피해자 수는 더 많을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울산태연재활원’에 ‘대구시립희망원’, ‘인강원’, ‘인천해바라기시설’, ’광주인화학교‘ 등을 넣어 보아도 크게 다른 점은 없을 겁니다.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발생하는 반복되는 폭력과 사망사건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사건이 알려질 때마다 우리 사회는 놀라고 분노하지만, 사건은 금세 잊혀지고 또다시 반복됩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은 혹시 ‘푸른 눈, 갈색 눈 실험’을 아시나요? 미국의 한 교실, 선생님이 말합니다. “푸른 눈을 가진 아이들은 갈색 눈을 가진 아이들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도 먼저 나가고, 점심도 먼저 먹고, 앉을 자리도 먼저 선택할 거야”. 사실은 거짓말이지만, 선생님이라는 권력자가 가진 말의 힘은 엄청났습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푸른 눈을 가진 아이들은 갈색 눈의 아이들을 무시했고, 놀리고, 따돌렸습니다. 갈색 눈 아이들은 실수하고, 슬퍼하고,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전날 까지만 해도 문제 없이 어울려 놀던 아이들이 선생님이 만든 서열에 적응해 적극적으로 “우월-열등” 역할을 따른 것입니다.

 장애인 거주시설의 학대와 폭력 문제가 반복되는 것도 기본적으로 이 실험과 비슷합니다. 장애인 거주시설은 왜 생겨 났나요? 장애인은 사회에서 적응해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 비장애인만큼의 속도와 능력이 없는 존재, 심지어 비장애인에게 ‘걸리적거리는’ 존재이기 때문에 따로 모아 관리(또는 돌봄)하기 위해 시설이 만들어졌습니다. 마치 ‘푸른 눈은 우월하고 갈색 눈은 열등해’라는 서열처럼, ‘비장애인은 우월하고 장애인은 열등해’라는 공식이 시설을 세우고, 움직이는 원칙인 셈입니다.

 밖에 있는 우리는 또 어떤가요? 시설에서 또 문제가 터져도, 우리는 마음 속으로 은근히 ‘장애인이니까, 시설이니까, 어쩔 수 없지. 일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힘들면 그러겠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열등하다”는, 사회가 만든 서열이 우리 마음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죠. 나아가 장애인이 말하는 (혹은 표현하는) 폭력 피해는 종종 “장애 특성”으로 여겨져 거짓말 혹은 착각이라고 무시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장애인이니까 그런 폭력을 당해도 어쩔 수 없다거나, 장애인은 정서적 학대에 무딜거라 거나, 혹은 작은 일도 부풀려서 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자신의 차별에 ‘흐린 눈’을 하느라 시설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공범인 셈입니다. 애초부터 차별에 뿌리를 두고 만들어진 공간이 존재하는 한, 제아무리 착하고 선량한 사람이라도 장애인을 “부족한 존재”로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시설은 존재 그 자체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가르는 차별적 선언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주인공인 은혜, 명운, 진강을 비롯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든 분들은 우리 안의 차별을 들여다보게 하고, 반성하게 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우선은 진실된 사과부터, 나아가 그동안 시설에서 부당하게 빼앗겼던 “친구를 사귈 권리”, “하고싶은 것을 할 권리”, “가족과 사이좋게 지낼 권리” 등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 분의 자립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하하며, 공범자의 한 사람으로 깊은 사과의 마음을 전합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아직도 태연재활원에 있는 분들, 아니, 한국의 모든 시설에 있는 사람들의 탈시설이 완료될 때까지 열심히 연대하고 투쟁하겠습니다.

 




제작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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