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선정작
잘가, 안녕
잘가, 안녕 | 이현빈 | 극 | 2026 | 29분 58초
시놉시스
장애를 이유로 평생 집 안에서 살아온 영아. 영아는 아빠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예감합니다. 영아는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2025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선정작 <마루와 내 친구의 결혼식> 제작진의 신작.
인권평
- 홍성훈(2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마침내 올 것이 왔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생각했다. 세상 모든 소리를 덮어버릴 기세로 눈이 쏟아지는 풍경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놀랍도록 고요하다. 반면, 그 고요함 속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뜨겁다 못해 데일 것만 같다. 무엇이 보는 이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 영화가 우리가 여태껏 몰랐던, 아니 알고 있어도 실은 모른 척했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에둘러 가지 않겠다. 이 영화는 아래와 같은 소재를 삼고 있다.
‘장애인 자녀 살해’
이 일곱 자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러나 이 일곱 자가 기존 미디어에 쓰일 때는 너무도 납작한 틀거리에만 찍혀 나온다. 마치 거기에 허용되는 이야기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장애인 자녀 살해를 다룬 뉴스 기사엔 무엇이 쓰이고 무엇이 가려지는 걸까? 굳이 애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기사에는 돌봄으로 인한 부모의 고통이나 자녀를 죽이기까지 인간적 고뇌라는 것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세세하게 기입되어 있다. 한편 생각해 보자. 우리는 살해당한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을 들어보았는가? 물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죽임을 당하기 전까지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꿈을 꾸었는지 알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아니, 정직하게 말해보자. 우리는 어떤 영역에서 의도적으로 알기를 멈춘다. 어떤 한 존재가 분명 거기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렇다고 마냥 장애인 당사자를 피해자의 위치로 두어서도 안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피해자이면서 한때 꿈과 욕망을 가진 사람임을 잊지 않는 법을, 이 복잡한 애도를 수행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비극을 멈출 수 있을까? <잘가, 안녕>이 어쩌면 열쇠를 제공할 수도 있겠다.
<잘가, 안녕>은 장애인 당사자인 영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나는 아빠와 함께 죽지 않을 방법을 생각하고 있어요”라는 영아의 첫 대사는 이 영화가 영아의 시선에서 전개될 것을 선언하는 셈이다. 영아는 아버지와 살고 있다. 둘은 거리를 두며 지내는데 영아는 주로 방에서, 아버지는 주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둘 사이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소통은 끊겨 있다. 아버지는 어떤 이유로 인해 빚을 지게 되었고, 함께 밥을 먹고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주방 식탁에 앉아 유서를 쓴다. 영아는 그런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아버지가 자신과 함께 생을 마감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음을 예감한다. 영아의 예감은 어느 날 벼락처럼 찾아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흙탕물 속에 있는 부유물처럼 차곡차곡 쌓인 기시감이 만들어낸 징후 같은 것이었다.
본인이 떠나면 남겨진 영아가 힘들 것이라는 슬프고도 독단으로 가득 차 있는 판단은 영아의 어머니도 한 바 있다. 어머니는 몇 년 전, 암으로 죽음을 맞았는데 병원에 입원하기 전 영아에게 했던 말─“영아야, 엄마 이제 곧 죽어. 아빠도 죽는다. 너는 혼자 살아나가야 해. 가끔 너를 박살내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나빠. 고통도 지나가는 거니까 받아들여.”─은 남겨질 영아의 삶을 비관적으로 전망할 뿐이었다. 영아는 본인의 삶을 언제나 비극으로만 바라보는 엄마, 아빠에게 ‘변수’가 되고 싶어 한다.
아버지의 결단만 남겨둔 상황에서 영아가 무기력하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활동지원사 정민과 함께 부단히 삶을 이어 나가며, 언제 있을지 모를 아버지의 살해 시도에 맞설 호신술을 연습한다. 영아는 아버지에게서 죽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윽고 아버지는 실행에 옮기는데, 영아를 직접 살해하는 것이 아닌 집안에 가스를 누출하면서 본인과 영아가 서서히 죽어가는 방법을 택한다. 잠에서 깬 영아는 생애 모든 노력을 기울여 집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하고 살아남는다. 하지만 스스로 생을 포기한 아버지는 끝내 숨을 거둔다. 살아남은 영아는 다음날 집으로 찾아온 활동지원사 정민과 아버지의 시신을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나눈다. 영아는 경찰에 신고하는 일만큼은 꺼리는데, 이유는 아빠의 살해 시도에서 살아남은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본인이 그저 ‘불쌍한 존재’로만 이야기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영아는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전복적인 시도를 한다. 활동지원사와 함께 아버지의 시신을 휠체어에 태워 절벽에 다다르고, 본인의 방식대로 ‘놓아준다.’ 다시 말해 절벽 끝에서 아버지를 바다로 밀어 넣으며, 영아는 세상이 규정하는 '피해자'라는 틀을 벗어던진 셈이다.
아마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마지막 장면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난감할 것이다. 나 역시 한참을 멈춰 있었다. 다만 이 말만은 하고 싶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비춰진 영아의 결심 굳은 표정을 오래도록 잊지 말아 달라고, 그 어떤 경우에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죽음은 없다고.
제작진 소개
| 연출 | 이현빈 | 기획 | |
| 제작 | 미묘 | 각본 | 이현빈, 이광재 |
| 촬영 | 강정훈 | 편집 | 우희정(우씨네 편집실) |
| 녹음 | 고헌 | 기타 | PD 나정선, 임금님 사운드 이상혁 음악 나정선 조연출 이광재 CAST 김경민(영아), 임금님(활동지원사 정민), 이태성(아빠 재덕), 오영아(엄마 미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