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선정작



말하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 신이명 | 다큐 | 2025 | 34분 42초



 

시놉시스


2024년 겨울, 성별과 연령, 장애유형이 각기 다른 세 명의 주인공 - 율희(7), 지호(8), 경환(28) - 이 발달운동센터 에블봄[able:봄]에서 ‘나의 AAC’언어치료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웃음이 많고 장난기가 많은 귀염둥이 일곱 살 율희, 차지(CHARGE) 증후군이라는 희귀 질환으로 난청, 삼키기와 호흡곤란, 편마비 등의 증상을 보이지만, 누구보다도 활동적이다. 언어치료실에서 줄곧 집중하지못하는율희. 특수교사 정은 선생님은 고민 끝에 새로운 놀이 수업을 기획한다. 놀이터와 간식을 좋아하는 지호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다. AAC를 쓰면서 문제 행동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고 드러누워 떼를 쓰곤 한다. 곧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지호를 위해 언어재활사 주한 선생님은 맞춤형 수업을 준비한다. 뇌병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환은 집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TV를 보며 누워 지낸다. 발성은 어렵지만 눈을 맞추고 손을들어 올리고소리 없이 입을 벌리며 의사를 표현한다. 그의 언어재활사 지연 선생님은 AAC를 통해 경환이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함께 새해 계획을 세우는 두사람, 경환은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다. AAC를 통해 조금씩성장해 가는세 사람과 그들의 여정을 함께하는 재활사들, 봄을 맞아 새로운 도전을 준비한다.




인권평

- 홍성훈(2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시간이 꽤 지난 일이지만, 나는 언어장애로 인해 차별을 받은 적이 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때였다. 면접을 앞둔 상황에서 나는 대학 본부에 요청했다. 내가 언어장애가 있으니 면접관들의 질문에 컴퓨터 문서 화면을 띄워 답변하겠다고, 그러니 필요한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정중히(괜히!) 요청했다. 그러자 대학 관계자는 굉장히 난색을 표하며 면접 위원회와 논의한 후 알려주겠다고 했다. 잠시 후 다시 걸려 온 전화에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답변의 요지는 간단했다. 우리 대학에서 실시하는 면접이 ‘구술’ 면접인데 나만 구술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면접을 본다면 그건 다른 입시생들과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그러니 나만 ‘특혜’를 줄 수 없다고 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답변이었다. 분명 나는 언어장애로 인해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지원을 요청했을 뿐인데, 그것을 특혜로 인식하는 발상은 어디에서 출발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이와 비슷한 답변은 특정 대학뿐 아니라 여러 대학에서 반복되었고, 나는 면접 기회조차 박탈당해 1년 더 입시를 준비해야 했다. 억울함에 인권위에 진정을 넣어봤지만 그것이 차별 행위라는 인권위의 결정이 나왔을 때는 이미 입시 전형이 끝난 뒤였다. 나는 종종 그때를 떠올리곤 하는데, ‘만약에’라는 가정법이 자연스레 붙곤 한다.


‘만약에 그 당시 내가 AAC를 사용해 면접을 봤더라면, 차별을 모면할 수 있었을까?’와 같은 질문이 따라오는데 답변은 썩 유쾌하지 않다. AAC를 사용했다고 한들 면접관들은 내가 말을 적고 재생하기까지 시간을 기다려주었을까? 대학 측은, 나의 소통방식뿐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적인 소통방식 외에 다른 모든 것을 거부한 셈이었다. 나는 그 단단하고 치졸한 비장애 중심주의에 치를 떨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후 나는 문자언어뿐 아니라 AAC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모든 환경을 나에게 맞출 순 없고, 때론 AAC를 이용한 소통방식이 시민들의 주목을 받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AAC를 이용해 지하철, 혹은 길거리에서 발언할 때면 약간 투박한 기계 목소리가 시민들의 이목을 끌 때가 있다. 그건 나만의 운동 전략이다!       


<말하지 않아도>는 보완대체의사통기기라고 일컬어지는 AAC를 사용하는 세 명의 장애인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율희, 지호, 경환님이 그 주인공이다. 이 세 명은 ‘애블:봄’이라는 센터에 다니면서 AAC를 사용하는 법을 익힌다. 옆에는 ‘언어재활사’들이 당사자와 일대일로 소통하며 그들의 일상에 AAC가 잘 정착하기를 조력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재활’의 관점에서만 세 명을 대하는 것은 아니다. 언어재활사들은 끈기 있게 AAC를 통해 이야기되는 당사자의 말뿐만 아니라 표정이나 행동, 분위기를 읽어내고 조금 더 다양하게 표현하도록 조력한다. 세 명과 각각의 언어재활사들이 눈을 맞추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조금 뭉클하기까지 하다. 여기에 힘입어 율희, 지호, 경환님은 AAC를 통해 센터에서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일상을 가꿔 나간다. 이를테면 율희 님은 AAC를 통해 엄마와 언니와 소통하고 지호 님은 치과 진료 후에 감자튀김을 쟁취하는데(?) 성공한다. 경환 님은 언어재활사와 함께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AAC가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줄 뿐만 아니라 조금 더 많은 선택지를 가능하게 하고 세계를 풍성하게 해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언어장애인들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우리 사회가 좀 더 다양한 소통방식에 열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목소리 없는 자는 없”기 때문이다.             

 



제작진 소개


연출신이명기획NC문화재단
제작프로덕션 DIP각본신이명
촬영박평강편집손영준
녹음-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