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죽여 연주하던 음악가, 해방의 광장으로
다양한 사회적 주체 한데 모인 연대의 장
단 한 명도 발길 돌리지 않는 극장 실현해
완벽하지 않기에 더욱 매력적인 ‘인권 축제’
【투데이신문 임규리 인턴기자】 “서울을 뒤집자, 부추전”
연일 쏟아지던 비가 무색하게 날이 맑게 갠 지난 22일 낮. 세상을 뒤집고자 하는 열망을 부추전으로 유쾌하게 풀어낸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의 노랫소리가 공원을 가득 채웠다. 이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의 열기는 27도에 달하는 이른 더위보다 훨씬 뜨거웠다.
올해로 24회째를 맞이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주제로 직접 제작한 영화를 상영하는 행사다. 2003년 광화문 광장에서 첫 발을 뗀 이래 매년 푸르른 봄날 마로니에 공원에서 관객들을 만나왔다. 영화제는 영화를 매개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장애인의 삶을 조명하는 데 열중한다. 이를 통해 장애인이 마주하는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이들의 생활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넓히는 데 목적을 둔다. 특히 발달 장애인을 위한 알기 쉬운 영화 소개, 수어 통역, 음성 및 자막 해설 등 배리어프리(Barrier-free) 시스템을 구축해 제작자와 관람객 모두가 장벽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
현장은 영화제 취지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공원 한가운데 놓인 ‘너는 365일 원하는 날에 영화 볼 수 있니’라는 영화 관람 차별 구제 소송 현수막 옆으로 시각장애인 보드게임 부스, 고(故) 박종필 감독 추모사업회 부스 등이 활기차게 줄을 이었다. 다양한 사회 주체들이 모인 현장은 그 자체로 거대한 축제의 장이었다.
투데이신문은 이번 영화제의 총책임자이자 현장의 최전선에서 행사를 지휘하는 박지원 사무국장을 만났다. 클래식 음악가 출신의 그는 “이 영화제에서 그간 갈망하던 예술을 발견했다”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광경 속에서 음악을 하며 가둬뒀던 갑갑한 마음이 해방됐다”고 했다. 축제의 열기 속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운 모습으로 현장을 이끌던 그를 만나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어우러지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만의 연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2003년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처음 문을 연 계기는.
장애인은 오랜 시간 대중 미디어에서 소외돼 왔다. 그러나 이들은 장애라는 신체적·정신적 특징이 있을 뿐 엄연한 지역사회의 일원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미디어를 통해 사회에 널리 알리고자 시작하게 됐다.
Q. 주류 영화제나 기존 극장 시스템과 비교했을 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최근 유명 국제영화제나 극장들도 장애인 관객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들이 장애인을 ‘동등한 관람객’으로 바라보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한다.
할인 티켓을 몇 장 쥐여준다고 해서 당사자들이 실제로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화면 해설이 제공되는 배리어프리 영화도 지극히 한정적이다. 현재 시스템은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동등한 선택권을 가진 주체로 보지 않는다. 그저 시혜의 대상으로 보며 배려하는 수준에 그친다.
반면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상영하는 모든 영화를 배리어프리로 제작한다. 보고 싶은 영화가 눈앞에 있어도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경험을 단 한 명에게도 주지 않기 위해서다.
Q. 주류 영화나 드라마 속 장애인 재현 방식 중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장애라는 특성이 장애인의 성격이나 인생 전부를 대변하는 것처럼 정형화하는 방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미디어 속 장애인은 대개 영화 <맨발의 기봉이>처럼 한없이 순수하고 착하거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나 <굿닥터>처럼 천재적인 지능을 가진 인물로만 묘사되는 경향이 있다.
비장애인의 개성이 저마다 다르듯 장애인 역시 개개인의 특징이 모두 다르다. 고집 센 사람, 성격 급한 사람, 유머 감각이 넘치는 사람 등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이 다양한 성격과 삶의 방식을 가진다. 일상에서 장애인을 직접 마주할 기회가 적은 시민들이 미디어가 만든 천편일률적인 이미지에 갇히게 되면 결국 사회적으로도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고착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지난 22일 박지원 사무국장이 야외 부스의 진행 상황을 살피고 있다. ©투데이신문
Q.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과 장애인이 직접 만드는 것에 차이가 있다면.
제삼자의 시선을 통해서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할 때 나오는 주체성이 가장 큰 차이다. 그 힘이 영화에 고스란히 묻어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이 아무리 깊이 공감하려 해도 당사자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제22회 영화제 상영작이었던 <거짓말>이 대표적인 예다. 신체적·정신적 사유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기 위해 일상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척 연기해야 하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현실을 담은 영화다. 기저귀를 집에 쌓아두거나 멀쩡한 팔을 들지 못하는 척 눈치를 보는 장면들은 오직 당사자들만이 담아낼 수 있는 현실 속 모습이다.
해당 영화 상영 후 장애인 당사자 관객들이 공감하며 상영관에서 저마다의 숨겨진 이야기를 꺼내놓기도 했다. 감독이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자 관객들이 호응한 것이다. 이렇게 당사자가 만든 영화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은 당사자 간 연대와 공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Q. 장애인이 주체적인 미디어 제작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가 선행돼야 할까.
우선 일상적인 교육의 기회가 대폭 확대돼야 한다. 제도권 학교가 아니더라도 미디어 제작 기술을 편하게 접하고 배울 수 있는 열린 공간이 필요하다.
미디어 제작 환경 자체도 장애인 친화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현재 방송·영화의 제작 현장은 ‘속도전’이다. 장애인의 고유한 속도를 고려하지 않는 비장애인 중심의 환경에서는 장애인 당사자가 참여하기 어렵다. 효율성만 따질 것이 아니라 조금 늦더라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현장이 마련돼야 한다.
Q. 올해 영화제 슬로건 “해보기 전까진 모르는 거잖아!”에 담긴 뜻은.
지난 2022년 열린 ‘발달장애인 시설 탈출 자유 독립 선언 기자회견’ 중 발달장애인 당사자 문석영 활동가의 발언에서 따왔다. 장애인들이 시설 밖 사회로 나오려 할 때 주변에서는 늘 “위험하다”, “현실성이 없다”며 반대하곤 한다. 하지만 해보기 전까지 결과를 모르는 건 장애인이나 마찬가지다. 비장애인 역시 처음 자립할 때 두려움을 겪지 않나. 꼭 자립에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으면 어떤가. 실패하면 또 어떤가.
영화제 단체 내에서도 처음으로 스스로 요리를 해 먹거나 첫 월급을 받아 조카에게 옷 선물을 하는 등 사회 진출에 멋지게 성공한 사례들이 쏟아지고 있다. 편견 섞인 시선에서 탈피한 이들은 이미 삶에서 수만 가지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중이다.
이 영화제는 바로 그 도전의 손을 맞잡아 주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시설 밖으로 먼저 나온 사람이 안에 있는 사람을 향해 “나도 해봤는데 괜찮더라. 너도 나올 수 있어”라고 말을 건네는 공간인 셈이다.
또 이 슬로건은 영화제를 향한 선언이기도 하다. 우리 영화제는 스스로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아간다. 일단 부딪혀보는 것이다. 해보기 전까진 정말 모르는 일이니까.
Q. 현장에 가보니 청년유니온, 세월호 416연대 등 다양한 사회단체들의 야외 부스가 눈에 띄었다. 이러한 ‘연대’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영화제가 단순히 장애인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다양한 가치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연대의 장이 되기를 바랐다. 올해도 시의성을 고려해 팔레스타인 연대, 색동원 공동대책위원회,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해고 복직 투쟁 단체 등을 초청했고 개막식에서 이들이 한데 모여 목소리를 냈다. 결국 어떤 정체성을 가졌든 차별 없는 공간에서 모두가 안전하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인권 축제’를 구현하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다.
지난 22일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참가자들이 모여 기념 촬영을 하고있다. 왼쪽부터 청년유니온 김지현 집행위원, 김설 비상대책위원장,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박지원 사무국장. 김 비상대책위원장에 의하면 청년유니온과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3년째 연대 중이다. ©투데이신문
Q. 일반 시민들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한 계획이 있다면.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야외 상영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장애인 당사자들이나 지나가는 시민들이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렇게 접근성을 높여도 ‘장애 인권’이라는 주제를 여전히 낯설게 느껴 영화제에 선뜻 발을 들이지 않는 시민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장벽을 허물기 위해 현재는 영화 배급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지역의 마을 영화제나 학교 소모임, 청소년 동아리 등에 상영작들을 꾸준히 배급 중이다. 관객이 영화제를 찾아오기 어렵다면 우리가 찾아가겠다는 마음가짐이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우리 영화제는 완벽하지 않다. 실수를 겁내지 않고 일단 뛰어들며되 소통을 통해 하나씩 고쳐나간다. 나는 그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은 지역이나 목적에 따라 수어가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수어 통역을 준비했다가 현장의 청각장애인 당사자들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시행착오를 겪은 적이 있다. 그 이후부터는 기획 단계부터 당사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영화제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처럼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완벽한 결과물만을 선보이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언어를 번역하고 좁혀나가는 과정 그 자체다. 결코 어렵거나 딱딱한 자리가 아니니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축제를 즐기러 많이 놀러 오셨으면 좋겠다.
출처 : 투데이신문(https://www.ntoday.co.kr)
숨죽여 연주하던 음악가, 해방의 광장으로
다양한 사회적 주체 한데 모인 연대의 장
단 한 명도 발길 돌리지 않는 극장 실현해
완벽하지 않기에 더욱 매력적인 ‘인권 축제’
【투데이신문 임규리 인턴기자】 “서울을 뒤집자, 부추전”
연일 쏟아지던 비가 무색하게 날이 맑게 갠 지난 22일 낮. 세상을 뒤집고자 하는 열망을 부추전으로 유쾌하게 풀어낸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의 노랫소리가 공원을 가득 채웠다. 이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의 열기는 27도에 달하는 이른 더위보다 훨씬 뜨거웠다.
올해로 24회째를 맞이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주제로 직접 제작한 영화를 상영하는 행사다. 2003년 광화문 광장에서 첫 발을 뗀 이래 매년 푸르른 봄날 마로니에 공원에서 관객들을 만나왔다. 영화제는 영화를 매개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장애인의 삶을 조명하는 데 열중한다. 이를 통해 장애인이 마주하는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이들의 생활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넓히는 데 목적을 둔다. 특히 발달 장애인을 위한 알기 쉬운 영화 소개, 수어 통역, 음성 및 자막 해설 등 배리어프리(Barrier-free) 시스템을 구축해 제작자와 관람객 모두가 장벽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
현장은 영화제 취지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공원 한가운데 놓인 ‘너는 365일 원하는 날에 영화 볼 수 있니’라는 영화 관람 차별 구제 소송 현수막 옆으로 시각장애인 보드게임 부스, 고(故) 박종필 감독 추모사업회 부스 등이 활기차게 줄을 이었다. 다양한 사회 주체들이 모인 현장은 그 자체로 거대한 축제의 장이었다.
투데이신문은 이번 영화제의 총책임자이자 현장의 최전선에서 행사를 지휘하는 박지원 사무국장을 만났다. 클래식 음악가 출신의 그는 “이 영화제에서 그간 갈망하던 예술을 발견했다”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광경 속에서 음악을 하며 가둬뒀던 갑갑한 마음이 해방됐다”고 했다. 축제의 열기 속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운 모습으로 현장을 이끌던 그를 만나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어우러지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만의 연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2003년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처음 문을 연 계기는.
장애인은 오랜 시간 대중 미디어에서 소외돼 왔다. 그러나 이들은 장애라는 신체적·정신적 특징이 있을 뿐 엄연한 지역사회의 일원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미디어를 통해 사회에 널리 알리고자 시작하게 됐다.
Q. 주류 영화제나 기존 극장 시스템과 비교했을 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최근 유명 국제영화제나 극장들도 장애인 관객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들이 장애인을 ‘동등한 관람객’으로 바라보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한다.
할인 티켓을 몇 장 쥐여준다고 해서 당사자들이 실제로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화면 해설이 제공되는 배리어프리 영화도 지극히 한정적이다. 현재 시스템은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동등한 선택권을 가진 주체로 보지 않는다. 그저 시혜의 대상으로 보며 배려하는 수준에 그친다.
반면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상영하는 모든 영화를 배리어프리로 제작한다. 보고 싶은 영화가 눈앞에 있어도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경험을 단 한 명에게도 주지 않기 위해서다.
Q. 주류 영화나 드라마 속 장애인 재현 방식 중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장애라는 특성이 장애인의 성격이나 인생 전부를 대변하는 것처럼 정형화하는 방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미디어 속 장애인은 대개 영화 <맨발의 기봉이>처럼 한없이 순수하고 착하거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나 <굿닥터>처럼 천재적인 지능을 가진 인물로만 묘사되는 경향이 있다.
비장애인의 개성이 저마다 다르듯 장애인 역시 개개인의 특징이 모두 다르다. 고집 센 사람, 성격 급한 사람, 유머 감각이 넘치는 사람 등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이 다양한 성격과 삶의 방식을 가진다. 일상에서 장애인을 직접 마주할 기회가 적은 시민들이 미디어가 만든 천편일률적인 이미지에 갇히게 되면 결국 사회적으로도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고착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Q.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과 장애인이 직접 만드는 것에 차이가 있다면.
제삼자의 시선을 통해서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할 때 나오는 주체성이 가장 큰 차이다. 그 힘이 영화에 고스란히 묻어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이 아무리 깊이 공감하려 해도 당사자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제22회 영화제 상영작이었던 <거짓말>이 대표적인 예다. 신체적·정신적 사유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기 위해 일상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척 연기해야 하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현실을 담은 영화다. 기저귀를 집에 쌓아두거나 멀쩡한 팔을 들지 못하는 척 눈치를 보는 장면들은 오직 당사자들만이 담아낼 수 있는 현실 속 모습이다.
해당 영화 상영 후 장애인 당사자 관객들이 공감하며 상영관에서 저마다의 숨겨진 이야기를 꺼내놓기도 했다. 감독이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자 관객들이 호응한 것이다. 이렇게 당사자가 만든 영화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은 당사자 간 연대와 공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Q. 장애인이 주체적인 미디어 제작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가 선행돼야 할까.
우선 일상적인 교육의 기회가 대폭 확대돼야 한다. 제도권 학교가 아니더라도 미디어 제작 기술을 편하게 접하고 배울 수 있는 열린 공간이 필요하다.
미디어 제작 환경 자체도 장애인 친화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현재 방송·영화의 제작 현장은 ‘속도전’이다. 장애인의 고유한 속도를 고려하지 않는 비장애인 중심의 환경에서는 장애인 당사자가 참여하기 어렵다. 효율성만 따질 것이 아니라 조금 늦더라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현장이 마련돼야 한다.
Q. 올해 영화제 슬로건 “해보기 전까진 모르는 거잖아!”에 담긴 뜻은.
지난 2022년 열린 ‘발달장애인 시설 탈출 자유 독립 선언 기자회견’ 중 발달장애인 당사자 문석영 활동가의 발언에서 따왔다. 장애인들이 시설 밖 사회로 나오려 할 때 주변에서는 늘 “위험하다”, “현실성이 없다”며 반대하곤 한다. 하지만 해보기 전까지 결과를 모르는 건 장애인이나 마찬가지다. 비장애인 역시 처음 자립할 때 두려움을 겪지 않나. 꼭 자립에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으면 어떤가. 실패하면 또 어떤가.
영화제 단체 내에서도 처음으로 스스로 요리를 해 먹거나 첫 월급을 받아 조카에게 옷 선물을 하는 등 사회 진출에 멋지게 성공한 사례들이 쏟아지고 있다. 편견 섞인 시선에서 탈피한 이들은 이미 삶에서 수만 가지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중이다.
이 영화제는 바로 그 도전의 손을 맞잡아 주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시설 밖으로 먼저 나온 사람이 안에 있는 사람을 향해 “나도 해봤는데 괜찮더라. 너도 나올 수 있어”라고 말을 건네는 공간인 셈이다.
또 이 슬로건은 영화제를 향한 선언이기도 하다. 우리 영화제는 스스로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아간다. 일단 부딪혀보는 것이다. 해보기 전까진 정말 모르는 일이니까.
Q. 현장에 가보니 청년유니온, 세월호 416연대 등 다양한 사회단체들의 야외 부스가 눈에 띄었다. 이러한 ‘연대’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영화제가 단순히 장애인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다양한 가치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연대의 장이 되기를 바랐다. 올해도 시의성을 고려해 팔레스타인 연대, 색동원 공동대책위원회,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해고 복직 투쟁 단체 등을 초청했고 개막식에서 이들이 한데 모여 목소리를 냈다. 결국 어떤 정체성을 가졌든 차별 없는 공간에서 모두가 안전하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인권 축제’를 구현하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다.
Q. 일반 시민들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한 계획이 있다면.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야외 상영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장애인 당사자들이나 지나가는 시민들이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렇게 접근성을 높여도 ‘장애 인권’이라는 주제를 여전히 낯설게 느껴 영화제에 선뜻 발을 들이지 않는 시민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장벽을 허물기 위해 현재는 영화 배급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지역의 마을 영화제나 학교 소모임, 청소년 동아리 등에 상영작들을 꾸준히 배급 중이다. 관객이 영화제를 찾아오기 어렵다면 우리가 찾아가겠다는 마음가짐이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우리 영화제는 완벽하지 않다. 실수를 겁내지 않고 일단 뛰어들며되 소통을 통해 하나씩 고쳐나간다. 나는 그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은 지역이나 목적에 따라 수어가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수어 통역을 준비했다가 현장의 청각장애인 당사자들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시행착오를 겪은 적이 있다. 그 이후부터는 기획 단계부터 당사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영화제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처럼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완벽한 결과물만을 선보이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언어를 번역하고 좁혀나가는 과정 그 자체다. 결코 어렵거나 딱딱한 자리가 아니니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축제를 즐기러 많이 놀러 오셨으면 좋겠다.
출처 : 투데이신문(https://www.n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