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5.28(목) ~ 05.30(토) | 마로니에공원

영화제갤러리

나와 함께 살자 토크쇼

  • 게시일20-07-17 00:00
  • 조회수183

 

52915나와 함께 살자

 

| 사회 : 조아라(장애와인권 발바닥행동

| 패널 : 최현숙(구술기록가) 이선희(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홍은전(구술기록활동가)

 

 

 


 

 

아라 : 사회를 맡게 된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아라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현숙 : 이 영화랑 엮인 건 아마 노인 돌봄 특히 인지장애 치매라는 용어가 미치광이 이런 낙인의 의미가 있어서 노인들을 노동자로서 돌봤던 경험, 엄마를 돌봤던 경험들과 엮여서 여기에 오게 된 것 같구요. 주로 하는 일은 노인을 비롯해 사회적 약자들의 평생 살아온 이야기를 쓰는 구술 기록가입니다.

 

선희 : 희망원에서 나온 당사자분들을 지원하고 있는 대구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이선희라고 합니다. 저는 이 자리가 부담스러웠는데 공간도 생각보다 작고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자리인 것 같아 다행입니다. 저도 입주자분들 만난 지 1년 조금 넘었거든요. 여전히 지원에 대한 고민이 너무 많고 부족한 게 너무 많은데 어떤 경험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저와 같이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으신 분들이 오셨으니, 서로 경험을 나누고 응원하면서 따뜻한 경험을 받고 싶어서 왔어요. 감사합니다.

 

은전 :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교사로 했었고 지금은 기록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 부랑인 수용소 피해생존자 기록을 했었고, 작년엔 장애 열사분들의 동지들과 가족들을 인터뷰해서 생애를 기록하는 일을 했습니다.

 

아라 : 오늘이 자리에는 서희주 김수년 수어통역사님이 함께 해주고 계십니다. 앞서서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희망원 지원이 영상에서는 시범사업 중이었는데 종료 이후에는 어떻게 살고 계신 지. 지금도 그렇지만 코로나 상황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애쓰면서 보내셨는데 그때는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선희 : 입주자분들이 작년 327일에 시범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희망원 폐쇄될 때 기존과 같이 의사 표현 무능력자로 분류가 되었어요. 탈시설 욕구조사를 한거죠. 설문지를 통해서 어떤 답변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시설로 보내려고 했거든요. 저희는 얘기를 했죠. 이분들이 여기에 살고 싶은지, 시설에 살고 싶은지 어떠한 표현도 안 했고 시설 생활 외에 다른 경험이 없었는데 어떻게 의사를 표현하시겠냐. 그래서 지역사회 경험을 통해서 의사를 확인하는 기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고, 시범사업이 시작했습니다. 40, 50년씩 시설에서만 살아가신 분들이 1년 동안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제한적이었고 영상에서도 보셨듯이 입주자분들을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표정이 밝아졌고 건강이 좋아졌고 일상이 만들어지는 모습들을 통해서 이분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구나, 이 것이 삶의 권리이구나라는 것들을 확인할 수 있었구요. 대구시에 요구하였고 시에서도 승인을 해서 20201월부터 자립생활주택에 입주해 살아가고 계십니다.

 

아라 : 이 영상을 보시면서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아주시겠어요? 손을 들어서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관객1 :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 노래 나 어떡해를 부르는데 그 장면이 시작부터 그분들의 마음이지 않을까 지원하는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고.

 

아라 : 절묘하게 나 어떡해 또 어떤 장면이 생각나세요

 

관객2 : 음료수를 직접 고르시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시설에서 대부분 나와서 자립생활 적응하시면서 자기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라 : 꺼내져있는 걸 하는 게 아니라 다시 고르는 장면 또 어떤 장면이 인상에 깊었을까요

 

관객3 : 병원에서 신발 벗었을 때 사회복지사분인 거 같은데 그분이 어느 정도까지만 알려주시고 이후부터는 이용자분들이 하셔야 한다고 하는 장면을 보고 지원을 할 때 직접 하실 수 있도록 명확하게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라 : 영상을 봤을 때 책상을 치면서 집에 가야겠다 하거나 음식을 안 먹겠다고 하시는 장면들이 당혹스러우셨을 것 같아요. 혹시 방금 말씀해주신 분이 치과에서 드러눕거나 우는 상황에 지원자였다면 어떻게 하셨을 것 같아요?

 

관객3 : 그런 상황이 난감하긴 하더라구요. 이 상황이 빨리 해결되기는 하니까. 현장에 오래 계신 선생님들은 명확하게 알려주시더라구요.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아요.

 

관객4 : 저는 우비 입고 나가시는 게 가장. 비를 맞아 보셨을까? 이런 생각도 많이 들었고요. 우비 입고 나갔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도 궁금했고. 같이 나가신 분들도 걱정이 있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결정한 과정도 궁금하기도 하고요.

 

아라 : 다시 패널로 돌아올게요. 세분이 여기 초대된 배경들을 다 설명해주시긴 했는데요. 현숙님은 요양보호사로 일하시면서 인지장애가 생기신 노인을 지원한 경험. 선희님은 희망원 지원 경험을 갖고 계시고, 은전님은 야학교사로 활동한 기간이 오래 있으신데요.

 

현숙 : 노인과 연관을 지어서 생각을 해보면 모두가 늙잖아요. 노인들의 문제가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큰 문제라고 하는데요. 거동이 불편하고, 인지장애가 온 노인들은 70살 이상을 넘어서 8-90살이죠. 노인들은 더 나아질 가능성은 없는거에요. 노인 돌봄의 핵심은 이 양반이 나아지진 않을 것이다. 나빠지는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만. 더 좋아지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 방향이고 그 속에서 가족의 경우라면 나빠지는 것 때문에 속상해서 서로 감정적으로 아프기도 하고 갈등도 생기고 이런데요. 노동자로서 본다면 거리두기도 되고 그런 속에서 노인돌봄을 어떤 태도로 할까를 고민할 수 있다는 거죠. 중요한 게 이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확인해서 같이 나빠지는 걸 속상해하거나 쓸데없어 하지 말고,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찾아내고 확인하자 이런 게 있고요.

 

제 엄마의 인지장애가 한 2-3년 정도 진행되다가 돌아가셨는데요. 엄마의 인지장애를 보면서 제가 생애를 알잖아요. 이 사람의 인지장애로 인해 남들이면 당혹스럽기만 한 반응들로 보일 수 있는데요. 저는 엄마의 생애를 좀 2010년경에 구술 생애사를 한바탕 기록했거든요. 그랬기 때문에 말년 2년 정도는 당혹스러운 집착이나 애증 이런 것들에 대해서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었어요. 그런데 남인 노동자의 경우에는 그거 없이 생애에 대한 이해, 맥락 없이 드러내는 증세에 대해 거리두기 하면서 속을 썩을 일은 없고 서로 간의 관계가 나빠지거나 다치지 않으면서 돌보면서 견디느냐 이거인 것 같고요.

 

사실 노인돌봄은 산업이에요. 장애돌봄은 발달장애도 그렇고 산업으로 넘어가지는 않았잖아요. 복지의 영역 안에. 노인돌봄은 거의 다 산업이에요. 요양보호제도가 되어서 요양시설이 있다고는 하지만 좋다 안 좋다를 넘어서 그런 요양원들도 다들 시장에 넘겨버린 것이죠. 공공 요양원은 거의 없어요. 그런 속에서 사장들의 입장은 어떻게 하면 최대한 돈을 덜 들여서 많은 이익을 뽑느냐 생각 속에서 노인과 돌봄 노동자들이 가족이 포기한 노인을 넣어놓고 사고 없이 돌아가시기를 바랄 뿐이에요.

 

제 입장은 출산파업을 하자인데요. 그런데 아이를 보면서는 제 입장과는 상관없이 너무 좋은 거에요. 주변 사람들이 저에게 배반당한 것 같아요. 그런데 좋더라구요. 이게 뭘까. 이 영화를 보면서도 아기들이 외연으로 들어나는 건 발달장애인과 비슷해요, 뭐가 위험한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소통에 관심 없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데 주변은 그것을 끝까지 보고 견디고 행복해하고. 그것은 계속 성장할, 쓸모 있을 가치가 있는 측면들을 보기 때문이겠죠. 이것의 차이는 뭘까. 노인을 배제하는 혹은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인뿐만 아니라 장애인을 배제하면서도, 자기중심적이고 지맘대로인 아기들에 대해서는 다들 봐주고 참아주고는 이 구조는 어떠한 쓸모로 판단하는 거죠.

 

아라 : 처음에 영상들을 보러 오신 여러분도 내가 어떤 사람을 지원하는 데 있어서 그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무엇이 좋은 지원인가를 상기하면서 괴로운 순간들이 있을 것 같아요. 탈시설을 지원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구조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생산할 수 없는, 알려줘도 발달할 수 없다고 판정된 사람들을 모아놓은 시설에 들어가는 것. 시설에 오랫동안 살아간 사람을 지역사회에서 지원한다는 게 우리 사회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를 생각하게 되는 과정이 지금인 것 같아요. 희망원을 빌어서요.

 

선희 : 의견을 전달하는 게 긴장되는 일이네요. 저는 말씀하신 것처럼 첫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할게요. 저희도 처음이라 부담감이 많았거든요. 입주자분들을 처음 만나고, 그 과정 속 느꼈던 감정들을 들려드리고 싶은데요, 시설에서 적게는 40년 보편적으로 50년 정도 그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으신 분들이에요. 최중증 중복장애인 당사자로 명명되었던 분들이 탈시설을 40년 만에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시는 거잖아요. 저희도 예전에는 지체장애인, 재가장애인 당사자를 지원하는 경험은 있었지만요. 중복장애인 지원은 처음이었거든요. 이 두 처음이 만나서 좌충우돌. 근데 기존의 참고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전무한 상태였어요. 처음부터 다시 고민을 했죠. 우리가 잘 사려고 하면 집이 있어야 하고 집이 있고 건강과 안전이 보장되어야 하고요. 그리고 말씀드렸듯이 의사소통의 무능력자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누리는 의료지원이나 내 명의의 통장을 만들든가 관공서에 가서 서류를 떼는데도 안 떼줘요.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분으로 되어서 후견인 선임도 해야 하고. 한번 신청하면 4-5개월 지나야 후견인 선임이 되어서 응급실을 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위험한 상황에 놓이기도 하구요. 건강과 안전 시설기록에 보면 이분들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요. 도전 행동에 대한 대처와 건강에 대한 응급상황 대처밖에 없공.

 

저희는 시설 밖에서의 삶이 그 안에서의 삶보다는 낫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거에요. 본인이 아파도 표현하기 힘들어 캐치 하지 못 하면 어떡하나 라는 고민. 준비를 하다 보니 안전과 건강에 키워드를 맞출 수밖에 없더라구요. 환경을 세팅하는 과정에서 지역사회 자립을 준비하는건지 안전한 보호를 위한 체계를 구성하는 건지 우려를 하게 되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분들이 중심이 될 수 있도록 구성을 했고요.

 

아쉬운 점은 시설에 계실 때 이분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살 집을 선택하고 동료를 선택하고 가구 배치를 정하고 좋고 싫음의 확인을 최대한 해서 자기가 살 공간의 환경을 구성해야 하는데요. 당사자가 많이 배제되었고 기관과 센터의 입장에서 환경구성을 한 점에서 아쉬움이 남아요. 탈시설 자립 생활을 준비하는 기관에서는 이 부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염두 해주시면 좋겠다라고 이야기를 드립니다. 환경구성을 하고 입주자분들이 나왔어요.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지원서비스. 24시간 지원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예산문제로 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낮 활동 시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여기서 함께 센터에 활동하고요. 10시부터는 야간지원인력이 주택당 1.

 

활동지원사의 마인드에 따라 당사자의 삶의 방향이 다르더라구요. 신발 신는 장면을 보시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데 활동지원사분들이 보기엔 이분들이 연배도 많고 안타까운거죠. 시설에서 고생했겠지, 그러다 보니 다 해주시는 거에요. 밥을 다 떠먹여 드리고 있고. 그래서 정기적인 면담을 했어요. 지원사 분들이 서비스를 잘 할 수 있도록 이 시간에는 이 서비스를 하고 이렇게 면담을 하니 생활이 패턴화 되어 있는 거에요.

 

우리가 마련한 일정표대로 입주자분들이 움직이고 있는 거에요. 저희도 사실 그런 시간들을 거쳐서 안전하고 조심스러운 지원이 아니라 입주자분들이 지역사회에서 내가 내 서비스를 요청할 수 있고, 예를 들면 날이 좋아 내가 나가고 싶네 이런 욕구를 표현하고 그것이 수용되어지는 경험들을 할 수 있는 지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숙: 가족은 어땠어요?

 

선희: 한 분은 무연고인 줄 알았는데 나오는 과정에서 가족이 확인되었어요. 연락이 와서 설명을 드렸어요. 자립생활이 왜 필요한지, 어떤 절차를 거쳐서 여기서 생활하신다는 안내를 드리니까, 그분들이 내가 돌봐야 하는데 그 쪽에서 돌봐주어서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근데 그거 아니라고 이분의 권리가 있어 여기서 생활하시는 거라고 이야기 드렸어요.

 

아라: 현재 가족분들은 워낙 이전에 열악한 제도 속에서 내쫓음을 경험해서 아직도 제도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고 내가 내 가족에 대한 돌봄을 부담해야 한다는 압박이 심한 것 같아요.

현숙: 아마 장애인들도 가족과의 갈등과 상처가 많겠죠. 노인 돌봄의 경우도 가족이 문제에요. 예를 들어서 인지장애 노인을 돌보는 것을 가족이 하면 정말 미치는 거에요. 다양한 애증의 관계들이 있고 속상함, 상처의 경험들 이런 것 때문에 가족이 돌보는 것은 가능하면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거든요. 그런데 최종적인 결정은 가족들이 하죠. 병원 입원하고 연명치료를 할지 안 할지 등등을 가족이 하는데 그러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기는 부분이 있고요. 그런데 사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가족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가족이 등장하면서 애증과 결정권에 가족이 개입했다면 상황이 정말 복잡해졌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은전 : 비오는데 우비 입고 나가실 때 당사자분들은 어떠셨는지 당사자분들끼리 얘기가 있었나요?

 

선희 : 여기서 함께 센터가 한 달에 한 번씩 전제 나들이를 나가는데요. 아까 영상 보셨듯이 어떤 분은 공간에 들어가는 걸 힘들어하시는 분이에요. 비가 오니끼 나들이를 취소 해야 하나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입주자분들한테 보여드리면서 이야기했고 다들 가기로 결정해서 나간 것 같아요.

 

현숙: 노인 쪽에서 보면 복지든 가족 돌봄이든, 노인이 무엇을 원하시느냐. 또 한 노인은 암 수술을 두 번이나 하셨는데, 농촌 바이크를 몰고 다니셔요, 제발 좀 그러지 말라고 그랬더니, 나는 이거 하다가 죽으면 되지, 그럼 나는 박혀있냐, 나는 이거 타다가 논두렁에 쳐 박혀서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 할 때 본인의 욕망이라던가, 노인복지 이런 것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죠.

 

은전 : 저는 노들야학에서 발달장애인을 지원한 경험이 없어요. 발달장애인이 시설 밖으로 나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이제 시작되는 일, 시작점에 있는 것 같고요. 매뉴얼도 없어요. 이것이 역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었는데, 낯선 분들인 거에요. 교사를 때리기도 하고 앉아있지를 못하고, 노들 야학에서 봐왔던 분들은 다들 앉아계셨는데, 이분들은 시스템 밖에서 오신 거에요. 제가 본 학생분들은 신체적 장애가 있어 누군가를 해치기 어려운데, 이분들은 위협적이기도 했어요. 저는 발달장애인들을 보면 쫄아요, 얼음이 돼요. 외국인 앞에 있는 것처럼, 책으로만 영어를 배어서 외국인 앞에서 말을 못하는 거에요. 쫄아 있고, 그런 것처럼 저에겐 아주 낯선 분들이지만 제가 알았던 발달장애인과의 경험이 없는 분들이 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보는 게 신기하고요. 몇 대 맞고 회의하고 그러면서 어떤 주변의 지원자들이 바뀌고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고 그런 것들이 저는 좋더라고요,

 

아까 희망원의 아홉 분, 의사소통 무능력자라고 불린다고요. 소통이라는 것은 쌍방으로 하는 것인데, 그것에 대한 책임을 그분한테 뒤집어 씌우는 것이죠. 물어보는 능력이 없는 것을 숨기고, 대답할 수 없는 능력으로 덮어버리는 것이잖아요. 이런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무연고라는 말도 얼마나 무시무시합니까. 운명이 갈리는 선에 아홉 명이 갑자기 해방을 맞이하는 것이잖아요.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해방의 기회를 맞이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해요. 그 상황에서 이분에게 자립할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자고 시범사업을 제안하고 추진한 일은 정말 놀라운 일인 것 같아요. 저는 영상 보면서 궁금했어요. 희망원이 폐쇄되면 저분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활동가분들의 태도가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이분들 탈시설 가능합니다라고 말하시면서, 이분들이 이 삶에 만족하는지 궁금하다고 이야기하는 태도. 저는 영상으로 발달장애인에 대해 학습하는 것이잖아요. 근데 이분들의 마음을 모르겠지만 우리가 함께 확인해 봅시다라고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태도가 아름다운 것 같아요.

 

아라 : 그런 노력들이 아름답죠. 그런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아름답지 않은 순간들을 많이 마주하는 것 같아요. 맞기도 하고 열이 뻗치기도 하고, 이 사람의 삶의 방향을 잡아가며 많이 싸우실 것 같아요. 쉽지 않은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시면 좋지 않을까

 

선희 : 이분들과 살다 보면 이 순간들이 얼마나 의미있는 지에 대해 잊을 때가 많은데, 우리는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이분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본인이 기분 나쁘면 본인이 습득한 방법들을 보이시는데, 처음에 시작했던 담당자들이 다 떠났어요. 힘들었던 것이지요. 갈 때, 여러 이유를 대긴 했지만요. 그 담당자분들도 사실 발달장애인 당사지 지원이 처음이었어요. 좌충우돌 일 년을 보냈는데, 설명하지 못하는 힘듦이 있었던 것 같아요. 쉽지 않은 일이구나 사람을 지원하는 것은 담당자도 그렇지만 입주자분들도 마찬가지 새로운 곳에 나왔는데 집도 달라지고 사람도 달라지고 하루에 만나는 사람이 되게 많고요. 아주 힘드셨겠구나. 그럼에도 본인의 패턴을 만들어가는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저는 입주자분들을 만나면서, 이웃 주민들의 민원이 힘들었어요.

 

20세대가 사는 아파트인데 자립 주택 2채가 있는데, 당사자가 와서 집값이 떨어진다. 등등 낯선 공간에 와서 불편하다고 이야기를 하면 층간소음으로 민원이 나오고요. 아파트 입주민들은 왜 대책도 없이 데리고 나왔냐고. 드러눕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도 학대라고. 안전하게 시설에서 잘살고 있는데 이렇게 데리고 나와서 어떻게 할거냐. 이런 민원이 많았었고요.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많이 했었거든요. 입주자분들도 이곳 주민이거든요. 그럼 주민 대 주민으로 만나야 한다. 힘들 때는 올라오셔서 입주자에게 말을 하셔라. 불편한 사항들을 같이 이야기할 수 있게끔 방음장치나 자립 주택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에 같이 해결하자고 책임과 역할을 갖자고 시간을 보냈었고요. 반상회 참여를 한다거나 이렇게도 하고. 긴장해서 자주는 못 갔는데 앞으로 계속 가야겠다. 함께 살아갈 거니까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입주자분들도 적응을 하고 불편함은 있지만, 호흡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라 : 나와서 적응하지 못하거나 탓을 당사자에게 많이 하는데 그들과 함께 살아본 적이 없고 대책이 없는 건 그 사람을 빼고 이 사회를 살아간 사람들이잖아요. 희망원 영상이 앞으로의 삶을 실천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교과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세분이 나눠주고 싶은 이야기를 말씀해주세요.

 

현숙 : 마지막보다는 고민을 조금 더 확장하는 이야기인데요. 편의점 냉장고에서 맨 처음 활동지원사가 보여줬던 이거 드실래요 했던 장면이요. 저는 그 냉장고를 열었던 장면이 다른 방식으로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수십개의 음료수 중 하나를 고르래, 뭔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하나를 고르라고 이러시다가 콜라를 선택하셨잖아요. 이게 좋다 안 좋다의 문제보다는 이분들이 처한 현실이라는거죠. 우리는 그렇게 이분들과 시도를 하고 있고 이분들이 선택해서 좋았다, 물론 주는 대로 드시는 것보단 나아간 것이지만요. 그것이 이분들의 오롯한 선택은 또 아닌 것 같다. 이런 측면에서 우린 혼돈 분열 도전 위험까지도 그 속에서도 한다는 거고요,

 

이렇게 탈시설을 시도했다가 다시 시설을 선택한 분의 이야기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야기가 되어서 저는 뒷 이야기들이 궁금하기도 해요. 시설로 돌아가는 것이 실패라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누군가 시도했다가 다시 시설로 가겠다. 왜 시설로 가느냐가 중요한 거죠. 그럼 그걸 좇아가 보는 것도 하나의 새로운 경로를 만드는, 혹은 우리가 의외의 것을 만나는 것일 수도 있다.

 

은전 : 저는 반대의 것들을 상상했는데요. 발달장애인분들이 나오기 시작했잖아요. 맨 처음에 신체장애인분들이 나올 때 2009년에 탈시설 투쟁을 시작할 때 그분들 노숙하면서 투쟁을 했는데 탈시설 시설을 벗어나는 게 아니라, 탈출한다는 의미의 탈로 탈시설이, 대안이 없는데 나오는 것, 그래서 탈출한다는 의미가 강했던 것 같아요. 저는 처음 알았는데 신체장애인보다 발달장애인이 시설에 더 많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그분들이 이제 나오기 시작한 거죠. 저에게는 어떤 느낌이냐면 쏟아져 나온다. 노들의 활동가였으면 위협적일 것 같아요.

 

신체장애인분들이 처음 나올 때 시설장애인의 역습을 사용했어요. 정서적으로 느낌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발달장애인분들이 나오는 게 그런 느낌이고 대단한 일이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어떤 상상을 하냐면 이분들이 나와서 시설이 텅 비게 되는 시간이 오겠죠. 카운팅이 될 거에요. 105. 다른 의미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의 숫자를 세는 것처럼 탈시설 장애인들이 시설을 비우고 문닫고 나오는 것. 저는 빠르게 올 거라고 생각해요. 10년 전엔 이런 상상을 하지 않았으니까. 굉장히 멋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탈시설 운동은 현장에서 고민해주시고 싸워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존경을 표합니다.

 

선희 : 저는 마지막으로 오늘 진정한 소통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입주자분들 만나지만 진짜 소통을 하고 있는지. 소통은 그 사람에게 집중하는, 당사자분도 누군가가 나의 말을 들어주고 나의 표현 나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수용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게 관계 맺기라고 생각해요.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저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 이웃과의 관계 맺기도 가능할 거라 생각하고요. 저희가 작년부터 하고 있는데 정형화된 자립 생활이 아니라 누구다울 수 있는. 입주자 개인다울 수 있는 지원을 고민하고 있고 진행형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라 : 이것으로 나와 함께 살자는 영상을 보고 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맺고요. 그러나 앞으로도 비슷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는 계속 될 것이고, 이런 기록들은 계속 나올 것 같아요. 오늘 만났던 감정과 느낌을 가지고 다음에 더 만나서 뭐가 또 변했는지 어떤 쓰나미를 맞았는지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